매일신문

보수적 대구사람, 금융주를 좋아한다는데…

"대박 기대도 힘들지만 리스크도 낮잖아"

20억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자영업자 A(57)씨는 80% 이상을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종에 쏟아부었다. 최근 금융주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속이 쓰리지만 주식을 팔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다시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김씨는 "예전에 금융주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린 기억이 있다"며 "막연하지만 앞으로 금융주로 다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보수적이고 한 번 준 믿음을 잘 버리지 않는 대구 사람들의 성향은 주식 투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금융업종에 대한 미련이 강하다는 게 금융권의 얘기다. 실제 한국거래소 대구사무소에 의뢰해 유가증권시장에서 대구 지역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량과 거래대금 비중을 전국 16개 광역시·도와 비교해 본 결과, 지역의 금융업종 투자비중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가들의 연령대가 높고 직접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통해 주식 거래를 하기보다는 영업점을 선호하는 것도 지역만의 특징이다.

◆대구사람은 금융주를 좋아해

대구의 금융업종 거래 비중은 전국 최고 수준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대구사무소가 2007년부터 최근까지 각 지역별 유가증권시장의 주식거래량과 거래대금 비중을 조사한 결과, 연 평균 금융업종 주식 거래량(표)은 2007년 24.64%, 2008년 24.09%, 2009년 19.48% 등으로 16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분기별로 세분하면 타 지역에 비해 최소 2.3%에서 많게는 11.3%가 높았고, 거래대금 비중도 타 지역에 비해 2.2~9.3% 높은 수준이었다. 전국 최고 수준의 거래량 비중을 보였던 시기는 2007년 2·4분기와 2008년 1·3분기, 2009년 1·2분기 등으로 3년간 절반인 6분기나 됐다.

대구의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띨 때 금융업종에 대한 투자 비중도 늘렸다. 증시가 살아나기 시작한 2009년 2분기의 경우 금융업종 매수(25.52%)가 매도(25.31%)를 앞질렀다. 이 시기 금융업종 매수세가 더 강했던 지역은 대구와 서울, 경남밖에 없다.

특히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금융업종을 활발하게 거래했다. 실제 금융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8년 3분기의 경우 지역민의 금융업종 거래량 비중은 26.06%로 서울(22.81%), 부산(19.66%)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가장 거래가 적었던 충북(15.71%)에 비해서는 무려 10.35% 거래 비중이 많았다. 이 기간 거래금액 비중도 18.69%를 기록해 서울(18.98%)과 제주(18.90%)의 뒤를 이었다.

◆왜 금융업종을 좋아할까

금융업종을 선호하는 건 대구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이 가장 큰 이유다. 증권이나 은행 등 금융업종주는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쉽고 등락폭이 크지 않다. 큰 수익을 보기는 힘들어도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구은행 본점PB센터 윤수왕 센터장은 "과거 섬유업을 하면서 재산을 모은 자산가가 많은데 이들의 투자 성향 자체가 보수적이어서 공격적인 주식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의 연령대가 높은 것도 보수적인 투자 자세를 보이는 이유다. 대구 지역 한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역의 1억원 이상 수신잔액을 보유한 고객 2만2천615명 중 50대 이상이 7천192명으로 33.2%를 차지했다. 또 60대 이상이 31.4%(6천372명)로 뒤를 이었다. 50대 이상 자산가가 무려 64.6%나 차지하는 셈이다. 반면 30대 고객은 2천357명으로 8.7%에 불과했다.

자산가들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1990년대 초 이른바 '트로이카주'(은행, 증권, 건설)로 짭짤한 수익을 본 기억을 아직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금융주 대박 신화에 향수를 느낀다는 것이다. 신현기 신한금융투자 대구지점장은 "금융업종이 움직일 때 종목을 가리지 않고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며 "증권주 때문에 죽겠다는 고객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선호

부동산 등 현금자산을 선호하고 온라인을 이용한 개인투자보다는 증권사 직원을 통한 영업점 거래 비중이 높은 점도 특징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직접 투자가 늘고 HTS를 통한 거래비중도 크게 늘어나는 최근 추세와 거꾸로 가는 셈.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HTS를 통한 거래대금 비중은 47.6%로 2008년보다 7.1%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영업 단말기를 통한 거래대금 비중은 같은 기간 50.7%에서 43.9%로 6.7%p 줄었다. 특히 개인투자자 중 HTS를 통해 이뤄진 비중은 79.4%인 데 비해 영업단말기는 17.2%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대구는 여전히 영업점을 통한 주식 투자 비중이 높다. 모 시중 증권사의 경우 하루 평균 전국 80개 영업점을 통해 이뤄지는 주식 매매 비중은 700억원 수준이다. 영업점 1곳당 평균 8억~9억원의 거래가 이뤄지는 셈. 그러나 대구 지역 영업점들은 하루 평균 영업단말기 거래 규모가 15억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서울은 절반 수준인 6억~7억원에 그친다는 것. 특히 온라인 주식거래의 경우 규모 면에서 서울이 대구보다 2배 이상 많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온라인 주식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1천700억원 수준으로 점포별로 20억원이 평균이지만 대구 지역의 경우 10억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증권사 직원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거래 규모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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