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취재 차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중해 연안의 눈부신 햇살과 푸른 눈을 가진 이들의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인구는 170만 명 정도로 대구와 비슷했다. 도로는 왕복 4차로 정도로 좁았지만 일방통행로가 많고, 불법 주차 차량이 없어 교통 체증이 거의 없던 산뜻한 도시로 기억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본 보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딕 거리였다. 일정 구역 전체가 고딕식 건물로 보존된 곳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했다. 그곳은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의 중심부로 카탈루니아 자치정부와 바르셀로나 시 청사도 있어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어딜 둘러봐도 중세 때 만든 웅장한 석조 건물과 그보다 더 오래된 로마 시대 유물이 현대와 적절하게 뒤섞여 있어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대구로 시선을 돌려보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문화 자산을 물려받은 바르셀로나는 복받은 도시다. 반면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한 건축물이나 당장에 관광객을 끌어들일 만한 볼거리가 모자라는 대구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충분한 자원은 있지만 산재해 있어 발굴하지 못했거나 이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대구시와 중구청이 추진하고 있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는 고무적이다. 대구시는 시민회관~문화창작발전소~향촌동을 연결하는 문화 자유구역을 계획하고 있다. 좀 더 넓히면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와 북성로의 오토바이'공구 골목, 경상감영공원 일대까지 포함한다. 이 지역을 '대구의 근대화'라는 주제로 묶어 스토리텔링식 문화 자산으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중구청도 비슷하다. 북성로와 향촌동 일대, 약령시,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중 이상화 고택은 단장을 끝냈다.
이 지역은 도심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권의 쇠락으로 오랫동안 방치된 곳이다. 또 개별적으로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대구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 가득한 곳이다. 얽히고 설키면서 제멋대로 휘어진 골목길이나 그 길을 따라 비뚤비뚤하게 들어선 집과 가게마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곳이 없다. 향촌동은 한국 전쟁 때 피란문학의 중심지였고, 60, 70년대에 청장년기를 보낸 이들치고 이곳에서 한 번쯤 막걸리를 마셔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당시 '향촌동에 간다'는 말은 도심으로 나간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이어지는 경상감영 공원과 식산은행 대구지점, 약령시, 이상화'서상돈 고택은 말할 것도 없다. 모두 매력이 철철 넘친다. 국내에서 대구의 도심만큼 근대와 현대가 잘 어울린 곳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듣기 좋은 빈말만은 아니다. 이들을 잘 묶어 살린다면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다.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시간과 경비가 많이 소요된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어 추진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안은 대구시와 중구청이 긴밀하게 협조해 이 자산들이 더 이상 없어지거나 훼손되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가능하다. 여론을 모으고,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설득과 보상의 과정이 필수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바탕 위에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시민과 행정이 합심해 추진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수만 원의 돈을 들여 오페라나 뮤지컬, 연극을 보는 것은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쓰레기만 아니라면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이나 부서진 창틀의 가게, 깨진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삐죽 올라온 풀들이 예쁘게 보일 때 비로소 문화가 시작된다. 대중교통 전용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하루에도 수십만의 인파가 북적이는 현대적 거리가 있고, 다른 한쪽은 도시의 근대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문화적인 대구의 도심을 꿈꿔 보자.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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