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봄날의 한파

요즘 날씨나 서민 경제 환경이 서로 닮은꼴이다. 4월도 중순으로 넘어가면서 산과 들은 꽃잔치로 요란한데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진눈깨비까지 내리는 한파가 찾아와 있다.

경제 여건도 그렇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실질경제성장률을 작년 말 전망치 4.6%보다 0.6% 포인트 높은 5.2%로 상향 조정했다.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여 잡을 만큼 우리 경제는 지금 '춘삼월 호시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날씨에서와 같이 지갑에서도 봄날을 느끼지 못한다. 빚이야 깔고 앉았든 말든 내 집이라고 아파트 한 채 마련했는데 부동산 대세 하락설이 연일 흘러나오고 있다.

선진국에선 누구나 그렇게 투자한다는 말에 따라 펀드에 투자했던 이들은 누구보다 한파에 시달려 왔다. 점입가경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최근의 펀드런 사태가 추위의 온도계다. 이달 들어서만 2조 원이 넘는 돈이 빠졌다. 환매 행렬이 본격화한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빠져나간 돈은 6조 원에 가깝다.

지금 증시를 빠져나가는 이들은 중산층, 서민, 보수적인 투자자일 가능성이 높다. 대박의 꿈을 좇기보다는 한푼 두푼 성실하게 모으는 안전 추구 스타일이다. 이들은 코스피지수가 1,700포인트를 넘어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던 2007년 하반기쯤 증시에 들어갔을 것이다. 은행 창구에서 펀드에 가입했을 확률도 높다. '은행=원금 보장'이란 관례를 믿어 손실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1년 만에 900선 붕괴라는 악몽에 직면했고 지금까지 마음고생을 하다가 주가가 1,700선에 안착해 원금을 회복하자마자 바로 손을 털기에 이른 것이다.

2004년, 2007년에도 유사한 펀드런 사태가 있었지만 그때에는 환매가 많은 만큼 설정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설정은 정체돼 있는 게 크게 다른 점이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다시는 주식을 안 해야지" 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직접투자를 할 수 있는 규모의 자금과 정보를 갖고 있는 큰손 투자자에게는 증시가 여전히 매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미, 서민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주식엔 데였고, 부동산은 떨어진다 말이 무성하고, 적금은 금리가 형편없다. 천재 음악가였던 모차르트도 구애받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위해 몇 년간 거의 매일 복권 판매소에 들렀다고 하는데, 한파에 움츠린 중산층과 서민의 알돈이 복권으로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이상훈 북부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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