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국에 말아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찾기가 힘들다. 서양의 수프나 일본의 미소시루(된장국)가 있지만 빵이나 밥을 말아 먹기 위한 음식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은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전제로 만든 음식이다. 양반가의 경우 국 외에도 다양한 탕반요리가 있으나 별다른 반찬이 없는 서민 가정에는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으로 만족해야 했다. 배추, 무, 호박, 감자, 토란, 시래기 등 주위에 흔한 채소는 무엇이든 국거리가 된다. 여기에 고기나 생선을 적절히 섞어서 만드는 국은 지역에 따라, 계절에 따라 손으로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국 문화가 발달한 이유로 흔히 식량난을 꼽는다.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나 외적의 침입이 많은 환경에서는 적은 양의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데, 국은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주는 조리방식이라는 것이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시기는 물론 평상시에도 한두 덩어리의 고기나 생선으로 대가족이 배불리 먹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국으로 끓이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과거 서민들에게는 고기뿐만 아니라 채소나 나물 반찬까지도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국은 같은 양의 재료로 가장 많은 숫자의 사람에게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요리 방식이다.
한끼를 급히 해결하기 위해 국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란에 쫓기거나 일상의 삶에 쫓겨 자리를 펼쳐놓고 밥 먹기가 마땅찮은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 밥을 말아서 단번에 뚝딱 해치우고 허기를 면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16세기 이후 생산력의 발달과 함께 전국 단위로 발전한 장시 문화는 국밥을 일반화시켰다. 객주집과 주막에서는 한끼 때울 시간도 빠듯한 장꾼들, 모처럼 물건을 사러 나와 돌아갈 길을 재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밥을 제공했다.
국은 현대에 와서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음식문화다. 그런데 밥상머리에 앉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국에 말아 먹으면 속 버린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말아 먹으면 과연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틀리지만 맞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우선 말아 먹으면 위장에 나쁘다거나 건강을 해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맞지 않다.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없다.
곽병원 곽동협 병원장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의학 서적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임상 결과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식사 습관과 관련해 생긴 이야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는 식사 속도, 씹는 습관 등과 연관시켜 보면 맞아떨어진다. 국에 만 밥은 입맛이 없을 때나 입안이 거칠어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들 때 그만이다. 대충 씹어서 빠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곽 병원장은 "꼭꼭 씹으면 소화효소가 많이 분비되고, 천천히 먹으면 혈당이 잘 올라가지 않는 효과가 있으므로 국밥을 먹을 때는 이런 점에 더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한의대 한방소화기내과 변준석 교수는 "한방의서에 나이 숫자 만큼 씹는 게 좋다고 나와 있는 걸 감안하면 말아 먹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다"며 "적게 씹으면 장에 부담을 주고 밥 먹는 속도가 빨라져 위액을 희석시키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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