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개를 여남은이나

개를 여남은이나

무명씨

개를 여남은이나 기르되 요 개 같이 얄미우랴

미운 님 오며는 꼬리를 훼훼치며

치뛰락 나리뛰락 반겨서 내닫고

고운 님 오며는 뒷발을 바둥바둥

물으락 나오락 캉캉 짖는 요도리암캐

쉰 밥이 그릇그릇 날진들 너 먹일 줄이 있으랴.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사설시조다. 초장에서 '바둑이 검둥이 청삽사리에 조노랑 암캐같이 얄미우랴'고 기록된 가집도 있고, 종장이 '문 밖에 장사 가거든 찬찬 동여 주리라' '이튿날 개 사옵소 외는 장사 거거들랑 찬찬 동여 내어 주리라'라는 등의 이본이 있다.

이본이 많다는 것은 이 작품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개를 여남은이나 기르는데 미운 이와 고운 이를 분간 못하고 미운 이가 오면 꼬리를 흔들어 반기고 고운 님이 오면 마구 짖어대는 개를 미워한다는 내용이지만 그 깊이가 만만치 않다.

대개의 사설시조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중장에서의 사설이 일품이다, 개가 짖어대는 모습이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사실적이어서 재미가 있다. 고운 님과 미운 님이 올 때 개의 동작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꼬리를 훼훼치는 것과 뒷발을 바둥바둥하는 것, 치뛰락 나리뛰락, 물으락 나오락 등의 대구법을 통해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종장에 버릴 밥이 있어도 너는 못 주겠다는 표현이 야속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애교처럼 귀엽게 들리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재미다. 전편이 특별한 기교를 쓰지 않고 말하는 그대로를 받아쓴 듯한 것에 더욱 정감이 넘친다. 고운 님이 오면은 짖어대는 그 얄미운 암캐를 응징할 방법이 기껏 쉰밥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너는 먹이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대갓집의 규수는 아닐 것 같다.

누구라도 자기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생긴다면 그 대상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기방 같은 데서 여러 기생들간의 질투나 시기에 의해 빚어진 작품으로 읽는다면 더 재미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읽으면 이 작품의 의미가 단순히 웃고 넘길 그런 재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한 귀퉁이의 답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문무학(대구예총 회장·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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