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라톤 중계헬기 통해 세계가 볼 '대구 옥상' 이대로 두렵니까?

세계육상대회 앞두고 도심 스카이뷰 관심

동인동 일대
500일도 채 남지 않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대구 도심의 스카이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대구 중구 동인동 일대(위)와 수성구 중동 일대.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동인동 일대
500일도 채 남지 않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대구 도심의 스카이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대구 중구 동인동 일대(위)와 수성구 중동 일대.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번씩 전기작업 때문에 옥상에 올라가는데 주위를 보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죠. 낡아 탈색된 기와들, 슬레이트, 폐타이어들까지 뒤엉킨 지붕들을 보면 대구가 이렇게 지저분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도시의 외관을 바꾼다고 몇년 동안 떠들썩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죠. 전 세계 사람들이 이런 대구의 모습을 본다는 게 왠지 부끄럽네요."(대구의 한 고층건물 관리를 맡고 있는 김모(42) 과장)

내년 8월 열리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의 마라톤 코스가 최근 확정됐다. 마라톤이 열리면 TV카메라를 통해 코스 곳곳이 세계로 생중계된다. 세계인들은 마라톤 코스 주변을 보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대구의 이미지를 규정한다. 대구로서는 세계에 대구라는 도시를 알리고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 대구시가 도로 정비와 조경, 건물 간판 등에 바짝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구의 모습을 정비하는 일에는 걸음이 느리다. 마라톤 방송 중계 화면에 헬기에서 내려다보는 영상이 자주 등장하는 걸 생각하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부끄러운 스카이뷰

최근 확정된 2011대회 마라톤 코스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청구네거리~수성네거리~범어네거리~황금네거리~두산오거리~수성유원지~중동네거리~대구은행네거리~반월당네거리~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돌이 코스'다. 기자는 마라톤 코스의 스카이뷰(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이 코스를 돌면서 고층빌딩과 고층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가장 먼저 중구청 15층 옥외 휴게소에 올랐다. 마라톤의 출발·도착지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하 국채보상공원)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종각과 산책로, 주변의 벚꽃과 잔디가 잘 어우러져 도심공원의 아기자기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종각네거리를 지나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오랫동안 정비되지 않은 중구 동인 3·4가 일대의 풍경은 이대로 세계인들에게 보여줬다가는 대구의 이미지를 낡고 발전되지 않은 도시로 만들 공산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북대 간호대학의 옥상은 지저분하고 무질서했다. 오래 묵은 때가 거미줄처럼 눌어붙은 콘크리트 바닥에 에어컨 실외기와 노란 물탱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주변은 더욱 심했다. 언제 칠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탈색된 기와지붕들 중간중간에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엉켜 있었다. 몇몇 집들은 지붕 한쪽을 천으로 덮은 뒤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검은색 폐타이어들을 어지럽게 고정시켜 놓았다. 생뚱맞게 누런 천으로 덮인 한옥도 보였다. 옥상을 녹색으로 칠했거나 조그마한 정원을 만든 집도 보였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동신교 쪽으로 가면서 저층 아파트들이 낡은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모습은 답답해 보였다. 국채보상공원과 신천의 스카이뷰는 아름다웠지만 그 사이의 지역은 마치 1970년대와 80년대의 도심이 발전을 멈추고 정지한 듯한 인상을 줬다.

수성구 중동 일대도 스카이뷰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인 경관부터 짜임새가 없었다. 집들이 구획되지 않아 골목길은 비뚤비뚤했고 대부분의 한옥은 기와가 탈색돼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쓰러질 듯한 슬레이트 지붕도 눈에 들어왔다. 어떤 집은 옥상에 갈색 고무 대야를 여기저기 얹어 놓았고, 폐자재들을 방치해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옥상도 보였다. 원룸이나 빌라 등이 많이 들어서있는 빌라촌에는 건물마다 어김없이 노란 물탱크들이 떡하니 서서 경관을 망치고 있었다.

수성구 수성동 2가나 중구 대봉동 일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인동이나 중동 일대처럼 스카이뷰를 해치는 폐타이어와 슬레이트 지붕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특히 방천시장을 덮고 있는 시커먼 천막은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청구네거리~수성네거리, 수성네거리~범어네거리 등의 코스는 사정이 다소 나아보였다. 최근 생긴 빌딩들과 고층 아파트들의 영향으로 스카이뷰가 많이 개선됐다. 기존 주택들도 상당수 현대식으로 지어져 갈색이나 청색 지붕이 어느 정도 보존돼 있었다. 수성못 인근 주택가에는 곳곳에 밭도 만들어져 녹색 풍경도 자아냈다. 하지만 중간중간 시커먼 때가 눌어붙은 콘크리트 옥상이나 노란 물탱크 등은 점점이 찍혀 여전히 전체 경관을 망치고 있었다.

◆과감한 지원과 투자 절실

대구시는 스카이뷰 개선을 위한 대대적인 지붕·옥상 개량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개인 소유물인데다 예산과 시민의식 부족 등으로 인해 큰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5월부터 대구시는 마라톤 코스 주변의 미관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사업에 20억원을 들였고 올해는 35억원의 예산을 잡아 추진 중이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 신호등, 게시판, 버스정류장 등 공공시설물과 간판, 표지판 등을 정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건물 외벽이나 옥상, 지붕 등도 포함돼 있다. 대구시 도시디자인총괄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대구 국제마라톤대회가 전국에 생중계될 때 코스 주변 주택 옥상에 고무 대야나 폐타이어 등이 그대로 노출돼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이후 옥상이나 지붕 개선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는 계산성당과 방천시장 주변 주택 40여 채의 지붕을 가벼운 기와형 철판으로 교체했고 수성구는 지난해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주택 1천700채의 옥상 폐자재를 정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정비만으로는 코스 주변의 스카이뷰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구시의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현재 상태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70억 세계인들에게 대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카이뷰 때문에 망칠 수도 있다. 게다가 도시철도 3호선이 운행하면 탑승객들은 지상 4, 5m 높이에서 아래를 조망하기 때문에 낮은 건물의 지붕이나 옥상의 미관을 개선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도 중요하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5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스카이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대구경북디자인센터 디자인경영연구소 탁훈식 소장은 컬러의 활용을 제안했다. "전체적으로 지붕이나 옥상의 컬러를 하나로 만들거나 각 섹터별로 같은 색깔로 꾸민다면 도심의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스카이뷰를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또 통일성을 갖게 돼 대구의 이미지를 좀 더 쉽게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지금이라도 아이디어를 모으고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라톤 코스 주변 건물과 주택 등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여러 단체와 공조해 캠페인, 시민운동을 벌임으로써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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