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은 제2의 삶이 시작된 곳"…2人의 인생역정

네팔인 크리스나씨·탈북 가수 김성란씨

경북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네팔인 크리스나 잔드라 데꼬다씨가 대구등산학교 강당에서 네팔어의 기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북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네팔인 크리스나 잔드라 데꼬다씨가 대구등산학교 강당에서 네팔어의 기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탈북 여대생 가수 김성란씨가 대구예술대 실용음악 실습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탈북 여대생 가수 김성란씨가 대구예술대 실용음악 실습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눈물 쏘옥 빠지도록 한국이 고맙슴네다" "꼬리아! 돈 니오 밧!"(Thank you very much)

대한민국에서도 대구경북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존재가 된 두 사람이 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자유를 찾아 탈북한 가수 겸 여대생 김성란(35·대구예술대 실용음악과 4학년)씨와 네팔 최고의 대학인 국립 트리부반(Tribhuvan university) 대학을 졸업하고 경북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크리스나 잔드라 데꼬다(28·Krishna Chandra Deukota)씨.

두 사람 모두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뿐더러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생활을 중도 포기할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김씨는 대구예술대 여대생으로 변신하면서 만족스런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크리스나씨는 마지막 학기 학비가 부족해 휴학하려다 대구등산학교의 도움으로 내년에 졸업이 가능하게 됐다.

대구경북이 탈북자나 외국인에게 살기 좋고, 생활하기 좋은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국제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 대구경북이 너무 좋고 행복한 곳이 됐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자세를 되새겨 보자.

◆탈북 가수 김성란씨,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북한 인민군 협조단 출신의 한 가수가 23세 때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 길림성 한 집안의 양딸로 6년간 생활하다 더 큰 자유를 찾아 남한행을 결정했다. 한국으로 온 건 2004년 10월. 양딸 생활은 한국에서도 계속됐다. 첫번째 양부모 집안에선 고생을 많이 했지만 두번째 집안에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전 대구예술대에 입학하면서 그토록 하고 싶던 음악공부를 하면서 가수활동도 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다.'

이달 7일 대구예술대에서 만난 탈북 여대생 가수 김성란씨의 삶은 대략 이렇게 정리됐다. 내년이면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학사 출신으로 새출발도 하고, 곳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발판도 만들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주저주저했던 자세도 상당 부분 털어내고 자신있게 대인관계를 맺고 있다.

"요즘은 정말이지, 살맛 남네다. 교수님들도 너무 잘 가르쳐주시고, 학생들과도 고조 재밌게 지내니 등굣길이 싱글벙글합니다. 특히 이곳 학교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산 속에 있어 제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과 비슷해 더 정감이 가고 좋슴네다.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사람들과 하루하루 즐겁슴네다."

북한에 있는 가족이 궁금하고, 탈북하다 잡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언니 소식도 궁금하지만 김씨는 모든 것을 털어버렸다.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맞바꿨다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김씨는 기자에게 한국 정착에 큰 도움을 준 두 사람을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4년 전 대구예술대를 소개하고 입학시켜 준 양아버지 김진호(57·서울 거주) 작곡가와 대구예술대 예술치료 전공 홍세용(54) 지도교수였다.

김씨는 먼저 양아버지에게 "어린이 동요에서부터 복음성가 등 200곡이 넘는 곡들을 작곡한 분으로 저에게 유명한 작곡가나 가수도 많이 소개해줬다"며 "너무 겸손하고 따뜻한 분이라 저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사람들을 많이 돕는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홍 교수에 대해서는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 나이도 많고 한국의 대학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고생할 때 항상 따뜻하게 격려해줬으며, 음악적으로 한단계 올라서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내년에 졸업하는 김씨는 "요즘은 대학 생활도 즐겁고 노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기쁘다"며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한국 국민으로 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노래를 한두곡 불러달라고 부탁하자,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반갑습니다' '휘파람'뿐만 아니라 북한의 정취가 듬뿍 담겨 있는 '김치 깍두기' '토장의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 등의 노래를 잇따라 불러줬다.

◆네팔인 크리스나씨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드디어 내년에 졸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해 경북대 지질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마지막 해인데 돈이 없어 포기할 상황이었는데, 대구등산학교에서 개설해 맡겨준 네팔 기초과정 강의료 덕분에 졸업이 가능해졌습니다. 학위를 받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할 예정입니다."

크리스나씨는 네팔 최고의 국립대학인 트리부반大 지질학과를 졸업한 인재다. 하지만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직접 돈을 벌며 학업을 이어가야 한다.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졸업한 뒤 네팔로 돌아가 한국 관련 네팔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크리스나는 집안의 기대가 컸지만 올해 학비를 조달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리 디스크까지 심해져 여러 모로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중 대구등산학교에서 의미 있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크리스나의 사연을 들은 장병호(50) 대구등산학교장이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네팔어 초급 강좌를 개설해 그에게 맡기는 대신 수강료로 그의 학비를 대주는 아이디어를 낸 것. 장 교장은 "산악인으로서 네팔인들에게 빚이 많다"며 "네팔인 셰르파들이 한국 산악인들과 함께 등반하다 40여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를 되갚는 차원에서라도 크리스나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구등산학교(www.dms.or.kr)는 다음달 3일부터 2개월 동안 매주 월·금요일에 2시간씩 이 강좌를 열어놨다.(053-257-8804) 강의료는 15만원이며 네팔에 관한 기초 지식 강의도 곁들여진다. 크리스나씨의 한국어 실력이 대화가 충분히 가능한 정도여서 네팔어나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수강에 어려움이 없다.

12일 오후 대구등산학교에서 만난 크리스나씨는 "대구등산학교의 제안에 너무 감사 드리고, 제가 알고 있는 네팔어와 네팔 문화에 관한 지식을 최선을 다해 알려드리겠다"며 "앞으로 네팔에서 중요한 일을 맡게 된다면 반드시 한국, 대구와 같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여성과 내년에 결혼하기로 했다는 그는 "부모님이 여러 가지를 판단해 결정했을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여건이 된다면 도움을 주신 대구 분들을 결혼식에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장 교장은 "내년에 대구등산학교에서 히말라야 훈련 과정이 있기 때문에 크리스나씨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