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歲月]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우리 것 알리고 외국 것 제대로 받아 들여야죠"

한때 해외에서 '어글리 코리안' 류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의 음식문화, 예절 등이 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는 대부분 '자신들과 다른 것,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추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 문화를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서양인들은 면접할 때나 이야기할 때 상대방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우리는 눈을 조금 아래로 뜨는 것이 예의다. 이런 차이점까지 서양인들에게는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이도수(70·경상대 영어교육과 명예교수) 교수는 이렇게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오해와 왜곡, 폄훼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바람으로 '우리 문화와 세계 문화의 접목'에 나섰다. 그 첫번째 작업이 영어 교과서에 우리 문화 심기였다.

이 교수는 1989년 교육부 고등학교 검인정 영어교과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심사용으로 제출된 영어 교재에 실린 글들이 영어권 문화에 대한 소개 일색이었습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는 내용은 극히 빈약했어요. 영어 교육도 일방적인 문화 전수보다는 상호교류 개념으로 바뀌어 가던 때임에도, 우리 문화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더군요."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교과서에 반영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영어로 된 문화콘텐츠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제 7차 교육과정을 입안할 때, 자료인사로 참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문화에 관한 내용을 대폭 늘릴 것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콘텐츠가 부족해서 큰 진전을 보지 못했어요."

이 교수는 그날부터 우리 문화에 관한 영어 콘텐츠 제작에 매달렸다. 주장만 펴서 될 일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10년 동안 7권의 책을 냈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 문화 콘텐츠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글판 '동서문화의 만남'과 이의 영어 번역본인 영어문화 에세이집 'Encountering Eastern & Western Cultures'를 출간하게 된 배경이다. 이 교수는 자신이 수집한 콘텐츠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세계아동철학연구소'에 파견 근무를 자청, 그곳 석학들과 토론을 거치고 내용을 보완하고 다듬었다.

이 외에도 이 교수는 '문화 자료를 활용한 영어교육'을 펴내 영어교육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당시는 '영어 구조를 체계적으로 익히면 영어 구사 능력이 저절로 생긴다'는 이론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언어체계가 아니라 언어수행 능력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수행 능력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때 길러지고, 그러자면 그 언어권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문법 체계 속에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 뒤로 외국어 공부는 언어체계 중심이 아니라 문화중심 교육으로 바뀌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문학 작품의 국내 번역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 국민의 영어실력은 우리나라 국민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만 그들은 번역 전문가 그룹이 두텁습니다. 이 전문가 그룹을 활용해 그들은 수많은 일본 작품을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 출판했는데 우리나라의 10배가 넘습니다. 형편이 이러니 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이해는 상당하지요. 이것이 곧 국력으로 이어집니다. 상품 판매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교수가 펴낸 '동서문화의 만남' 번역본인 'Encountering Eastern & Western Cultures'는 한국학과가 개설돼 있는 외국의 대학과 해외의 한국인 학교에 보내질 예정이다. 미국에만 해도 한국인학교가 6천개에 이른다.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곧 한국을 세계와 접목시키는 것이 된다.

"우리 문화, 우리 음식은 충분히 세계적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리지 않으니 우리 것은 추한 것, 나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게 사실입니다.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의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 근무 당시 일화는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미국 근무 당시 외국인들이 혐오하는 된장과 김치, 비빔밥 등을 수시로 대접했다고 한다. 몇번 맛을 보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한국 음식을 찾는다. 몰라서 혐오했지만, 알고 나니 스스로 찾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계화 시대다.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리고 외국의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우리 문화를 알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와 문학을 제대로 알리는 데도 나서고 있다. 그가 쓴 '영문학 산실을 답사하며 들려주는 문학과 문화 이야기'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답사하며 그곳 문학을 이해하는 책이다. 학생들은 책으로만 읽던 현장을 직접 답사함으로써 생생한 문학의 향기를 접할 수 있고 그들의 문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결국은 다양한 문화와 생활, 문학을 알고 이를 통해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 세계 문화의 한국화에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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