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만 만나면 숨이 턱, 사람들이 무서워요"

대인공포증-"모두가 나만 지켜보는 것 같아…"

▲사람을 무서워하는 대인공포증(사회공포증)은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질환이다. 사진은 경북대병원 정신과 이승재 교수.
▲사람을 무서워하는 대인공포증(사회공포증)은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질환이다. 사진은 경북대병원 정신과 이승재 교수.

#"그저 성격이 조금 내성적이고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 시선에 유난히 신경을 쓰다 보니 민감해졌을 뿐이라고 여겼죠.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민재(가명)의 부모는 갑작스런 아들의 자퇴 선언에 깜짝 놀랐다. 새 학교에 진학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 반 친구들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사소한 문제로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 행여 집단 따돌림이 있었는지 걱정스러웠던 담임 교사는 반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정작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목한 친구는 전혀 엉뚱한 학생이었다. 민재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목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교 1학년이 된 정연주(가명)씨는 학과 모임이나 미팅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수업을 들을 때에도 주위 사람들이 자신만 지켜보는 것 같아 집중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 증세가 심해졌는데,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대인관계가 힘들어졌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무서워요. 딱히 무슨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닙니다. 사소한 문제에도 저를 비난하는 것 같고, 행여 수업시간에 발표라도 해야 할 때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그저 '용기를 내봐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100명당 5~10명이 대인공포증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대한 공포증을 갖고 있다. 병적으로 심각해지면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등 특정 공포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특정 공포증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이나 상황을 피하면 그만이다. 만약 이런 공포반응이 평범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경북대병원 정신과 이승재 교수는 "무서운 사람도 아니고 왜 보통 사람을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100명당 5~10명 정도가 일생에 한 번은 이런 장애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른바 '사람 공포증'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장애는 의학적으로 사회공포증 또는 대인공포증으로 부른다. 대인공포증은 단지 대중 앞에서 발표하거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승재 교수는 "타인에게 간단히 길을 묻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등 일상적인 사회적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눈을 못 보고, 식은땀을 흘리고,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치고, 입이 타 들어가고, 말을 더듬는 등의 공포반응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런 공포에 빠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대부분 그런 상황을 회피한다"고 했다.

단순히 수줍음과는 다르다. 흔히 숫기가 없고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정도로 인식하지만 실제 개인이 겪는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수줍음은 일상생활에서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지만 대인공포증은 불편을 느끼는 상황 자체를 피하게 되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태도가 부정적이라고 여기며, 지극히 주관적이고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회생활 자체를 못하게 된다.

◆10대 후반에 가장 많이 발생

대인공포증이 무엇보다 무서운 이유는 크게 3가지. 첫째, 이들이 피하는 것이 주삿바늘도, 뱀도, 공포영화도 아닌 사람이라는 점. 불편하면 그냥 피하고 살면 된다는 처방은 사회공포증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승재 교수는 "대개 환자들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하지 않고 살겠다'고 결론 내리는데,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둘째,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위치를 정립하기 시작하는 시점인 10대 후반에 '사회공포증'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런 시기에 대인공포증이 나타나면 스스로를 겁쟁이, 무능함, 낙오자, 비난, 창피라는 단어로 정의해 버린다.

계명대 동산병원장인 정신과 정철호 교수는 "청소년기 정신장애는 15~20%의 빈도를 보이는데, 특히 적응장애, 우울과 불안, 학교 거절증, 주체성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특히 새 학년이 되면서 친구나 선생님과의 헤어짐, 학업의 어려움과 공부 시간 증가 등의 새로운 내·외적 환경 변화 때문에 우울, 불안뿐 아니라 대인관계 회피 등도 나타난다. 정철호 교수는 "적응장애를 겪게되면 불안과 우울 증상이 있고 수면장애가 있으며, 친구나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고독해지기 쉽다"고 했다.

셋째, 사회공포증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대부분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남에게 고통을 알리지 않는다. 남들이 알면 더욱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 증상을 호소해도 흔히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용기가 없어서 그래. 별것 아냐. 자꾸 부딪히면 돼"라는 상투적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환자들은 점점 희망을 잃고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교정 가능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어렸을 때 남들 앞에서 큰 망신이나 무안을 당했던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부모에 의해 항상 남을 의식하도록 엄격히 교육받은 사람, 매사에 완벽하게 행동해야 타인이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교육받은 사람에게서 잘 생긴다. 또 부모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 자녀들은 간접적으로 사회 불안을 학습하게 된다.

현재까지는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회공포증 환자들만 모아서 집단으로 치료할 경우 개인으로 치료할 때 보다 좋은 효과를 거둔다. 인지행동치료는 인지치료와 행동치료가 결합된 면담치료나 대화치료의 한 형태. 치료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대개 12차례 면담으로 이뤄진다. 인지치료는 질병에 대한 교육, 사회공포증 환자가 흔히 보이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다. 이승재 교수는 "사회공포증은 무서운 것을 회피하면서 지내기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엄청난 정신질환"이라며 "특히 청소년에서 젊은 성인기에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조기에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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