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총대! 이는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핵심 요소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북한은 쌀을 포기한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주민이 굶어죽더라도 총대는 절대 내려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후계체제 구축이 북한 최대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쌀보다도 총대를 굳세게 잡아 쥐어야 한다. 이게 '선군정치'의 요체다.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북한은 대내 통제와 결속을 위해 총대를 높이 세워야 한다. 이에 군사적 모험이 필요하다. 천안함 침몰 사고는 북한 선군정치의 군사적 모험 노선과 무관하지 않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우리의 국가 안보, 위상, 자존심이 한꺼번에 거덜나고 말았다. 한동안 엄청난 충격과 혼란 속에서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사태를 수습하고 대한민국의 좌표를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북한 관련설이 몰고 올 파장을 고려하여 우리 정부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입장에 편승하여 다양한 논리가 난무하면서 음모론까지 횡행하고 있다. 암초설에다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망치려는 피로 파괴설 등 온갖 조잡한 논리까지 동원되면서 북한 무관설이 유포되었다.
천안함 함미 부분이 인양되면서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체 파손상태가 조사'공개되면서 외부 폭발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어뢰 공격설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김태영 국방장관도 천안함 침몰사건을 "국가 안보 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인식한다고 하였다. 물론 정확한 침몰 원인은 보다 결정적인 증거 확보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북한은 인정은커녕 남한의 조작으로 뒤집어씌울 것이다.
북한은 천안함 침몰 사고 22일 만에 침묵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천안함 침몰이 자신들과 무관하며 북한 관련설은 '날조'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점차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하니 발뺌하는 모습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이 북한이 자행한 테러로 밝혀지자 사건 발생 3일 만에 "터무니없는 망동"이라고 잡아뗐으며, 1987년 KAL기를 폭파하고 7일이 지나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변했다.
북한 소식통인 '열린북한방송'은 15일자 기사에서 북한은 13일 "간부강연에서 천안함 사건은 남한의 반북세력들이 대북대결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해 조작한 '모략 자작극'으로 내부교양을 하고 있으나 고위 간부들은 최고 지휘부에서 이번 일을 실행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그와 함께 북한 고위 간부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소형 잠수함의 신형 스텔스 기술 개발 성공으로 기습공격형 전술을 테스트해 볼 군사적 필요성이 있었고 여기에다 작년 11월 10일 대청해전에서 북한이 큰 피해를 당하고 나서 김정일과 김정은이 두 번이나 남포 서해함대사령부를 방문하여 철저한 보복을 독려했다고 한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2012년까지 후계체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시간이 촉박하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군사강국과 동시에 선군정치의 사상강국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선언해왔다. 다만 경제강국이 문제인데, 경제강국은 북한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의 경제 수준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경제 회복의 길은 요원하다. 후계 구축 과정에서 인민경제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세습 후계자를 옹립할 특권 통치층의 결속과 지지가 더욱 중요하다. 세습 후계자를 영명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상징 조작과 더불어 군사적 모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북한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방식은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쌀' 즉, 경제 문제를 최소한 해결할 수 있는 고육책으로 중국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외전략으로는 핵 보유를 전제한 6자회담을 통해 대북 지원을 끌어내는 한편,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로 대미관계를 개선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대내'대중'대미 전략 위에서 최근 대남전략의 방향은 강경 모드로 선회했다.
이번 천안함 격침은 지상에서의 게릴라전과 유사한 북한의 새로운 전술 형태로 세습 후계자의 '군사적 위업' 성취의 일환으로 자행된 도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이 단계에서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는 데에 우려가 크다. 금년 후반기 G20 서울 개최 시기 또는 내년 초쯤 대남 강경 드라이브를 걸면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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