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날아가버린 기억과 살아남은 이미지…

정용국 현대미술 자아성찰展

▲정용국 작
▲정용국 작 '무작위의 풍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촛불 시위, 스노 점프, 여름 여행 장면…. 우리의 2009년은 공공의 기억과 더불어 개인의 기억까지 매우 다양한 이미지로 구성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2009년의 기억은 흐릿하다. 그 실루엣만 남아 사라진 것이 태반이다. 기억된 이미지가 '많은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용국의 작품 '무작위의 풍경'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2009년에 일어난 100가지 이상의 이미지를 한 화폭에 담았다. 거대한 화폭에 사건 이미지의 실루엣을 겹쳐 그리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이미지가 되었다. 우리 기억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미지의 폭주 속에 점점 무덤덤해지는 우리의 머릿속 같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도 무작위, 즉 랜덤(random)이에요. 무의미한 랜덤이 사건을 확대시키기도, 축소시키기도 하죠."

극도로 추상적인 듯하지만 구상인 작품이 있다. 김호득의 1995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은 재현의 대상을 타인의 그림으로 한 것이 새롭다.

얼핏 추상화처럼 보이는 작품 '파란만장'은 지극히 구상적 작품이다. 끔찍했던 살인사건 현장의 핏자국을 그대로 따라 옮겨 그린 것이니 말이다. 삶과 죽음이 파란만장했던 한 탈북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보며 작가는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전시장 한쪽을 차지한 작품 '질주'는 현대미술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목소리다.

"현대미술은 지금 물질적 특성과 표면의 화려함에 집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가다 보면 점점 사라지지요. 현대미술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평론 글을 벽에 베껴놓은 작품. "내 전시를 보고 쓴 글과 그 글을 작품화한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인간의 내장을 먹으로 그려온 작가가 맞나 싶게, 새로운 변신이다. 생각의 흐름에 충실히 따라가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에 가장 알맞은 옷을 찾아나가는 작가의 여정이 흥미롭다. 현대미술 자아성찰 3부작 '어! 이것 장난 아닌데?'의 3부인 이번 전시는 5월 15일까지 갤러리분도에서 열린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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