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오버(spillover) 효과'란 물이 넘쳐흘러서 인접한 메마른 논까지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서울이 넘쳐 수도권이 잘 살게 되었고, 충청'강원권까지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영'호남도 정부 말 잘 듣고 조용히 기다리면 언젠가는 잘 살게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다.
조선시대만하더라도 서울은 단순한 행정중심지였다. 하지만 그 때에도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의 삶과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서울 중심주의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울은 다른 도시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고, 행정기능뿐만 아니라 경제, 교육, 문화, 과학기술, 정보 등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국가중추기능이 집중된 거대도시로 변했다. 서울이 커지면서 거대장치산업을 제외한 고부가가치 제조업은 인근 경기와 인천으로 집중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도시 건설로 사람까지 경기도와 인천으로 모여 들고 있다. 서울이 넘쳐흘러 수도권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도권으로의 과도한 집중이 장기적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인식 하에 1970년대 말부터 수도권 규제와 더불어 지방 육성 정책에 착수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해 강력하게 수도권 규제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같은 강력한 규제정책은 시대의 변화와 시장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 세계화로 인한 무한경쟁시대의 도래는 수도권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시대에 뒤처진 불합리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급인력과 기술 및 국가중추기능이 집중된 수도권에 첨단산업의 입지수요가 증대하고, 이에 따라 수도권 규제는 지속적으로 완화됐다. 첨단 기업은 수도권으로, 지방에 있던 저부가가치 전통산업은 중국, 베트남 등으로 빠져나갔다. 대다수의 지방도시들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11월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규제완화의 하이라이트인 대폭적 규제철폐를 단행했다. 이제 남아있는 실질적 수도권 규제라고는 대학 신'증설에 관한 것뿐이다.
그동안의 수도권 규제에 따른 반사이익 대부분은 충청'강원권으로 돌아갔다. 특히 충청권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크게 증가한 곳이다. 2000년 이후 8년 간 20만명이 늘어 계속 인구가 줄고 있는 대구경북과 크게 대비된다. 지방이전 수도권 기업도 70% 이상이 충청권과 강원권으로 옮겨갔다. 게다가 천안, 아산, 당진, 청주 등에 첨단 대기업들이 입주하면서 2006년에는 제조업 생산에서도 대구경북을 앞질렀다. 신설 대학과 수도권 대학의 분교들 역시 이 지역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계획되었던 세종시를 교육'과학'경제 도시로 바꾸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미 구축된 충청권의 첨단산업 육성기반이 날개를 달듯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충청도 사람들은 즐거워하지 않는다. 더 달라는 것인가? 표정관리 하는 건가?
충청도는 결코 '멍청도'도 아니고, '핫바지'도 아니었다. '느려터지고' '순박하다'는 것도 다 옛날 얘기다. 오히려 그동안 큰 소리만 쳤던 대구경북이 과연 얼마나 실리를 챙겼는지 생각해보면 한심스럽기 이를 데 없다. 충청권은 시장 기능에 의해 서울'수도권과 이어져 자연스레 중부경제권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정부까지 힘을 보태고 나서니 발전이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수도권이라는 말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수도권이 중부경제권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구경북을 포함한 영'호남지역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자들은 수도권이 발전하면 그 효과가 영'호남에도 미치지 않겠느냐고 유혹한다. 그 말대로라면 충청도와 강원도가 꽉 차고 흘러 넘쳐야 남부지역인 영'호남에도 그 혜택이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영'호남까지 흘러넘칠까. 20~30년 안에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아득하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혜택이 흘러넘치는 속도보다도 남부지역으로부터 수도권이나 충청권으로 기업과 인재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지 않을까? 혜택이 흘러넘치기에 앞서 영'호남이 먼저 고사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수도권론자들이 내세우는 스필오버 효과의 달콤한 유혹에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이유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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