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2급인 김원태(28·칠곡군 석적읍)씨는 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네"라고 외마디로 끝내거나 무심히 먼 산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말이 없다 보니 친구도 없다. 늘 혼자 멍하니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가 지금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 아파도 달리 내색할 줄도 모른다.
◆감기인 줄만 알았는데…
20일 오전 영남대병원에서 만난 원태씨는 기온이 20℃에 육박하는 완연한 봄날씨에도 두툼한 한겨울 점퍼를 입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 혹시라도 병세에 영향을 줄까 옷을 껴입었다고 했다.
28세의 청년은 누나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덩치로 봐서는 누나를 보호해줘도 시원찮을 그였지만, 누나는 마치 아이인 양 동생을 챙겼다. 누나 김선주(32)씨는 3주 후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몸이었지만 "자신 외에는 챙겨줄 식구가 없어 늘 직접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냥 보기에는 조금 어눌한 듯한 원태씨. 그가 처음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은 것은 2008년 겨울 무렵이었다. 감기인 줄 알고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혈액 수치가 너무 낮게 나온 것. 이후 그는 벌써 1년 반 넘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는 2주에 한 번씩 혈액을 수혈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피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 생긴 병이다 보니 혈액을 외부에서 공급해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혈을 해도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다.
약물요법도 사용해 봤지만 원태씨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부작용으로 얼굴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누나 김씨는 "원래 깨끗한 피부였는데 약물치료를 하면서 여기저기 뾰루지와 얼룩덜룩한 반점들이 잔뜩 생겨났다"고 했다.
남은 치료법은 골수를 이식하는 것뿐이다. 천만다행으로 골수은행에서 원태씨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았고, 골수공여자 역시 기증에 동의를 했지만 이제는 골수 이식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
조혈모세포 은행에 골수기증자의 치료비용 900만원을 먼저 예치시켜야 이식 절차가 진행되고 수술시 발생하는 비급여 치료비도 수백만원 나오지만 원태씨 형편에는 이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올 7월 7일로 예정된 골수이식 수술까지는 적어도 1천5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지적장애 부모와 같은 장애
원태씨가 언제부터 장애를 갖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누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좀 느리다고만 생각했지 지적장애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가 지적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군 입대 후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다. 훈련 조교의 권유로 받게 된 검사에서 지적장애 2급 진단이 내려졌고, 원태씨는 군 생활을 마치지 못한 채 훈련소에서 되돌아와야 했다.
사실 원태씨는 부모 모두 지적장애가 있다 보니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누나는 "부모님이 장애가 있다 보니 맏딸로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구미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며 "돈을 버느라 집을 떠나 있는 사이 동생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 보니 행동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며 마음 아파했다.
원태씨는 여기저기가 성치않다. 어릴 적에 작두를 갖고 놀다 손가락이 잘려 늘 두꺼운 장갑을 끼고 다닌다. 치아도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앞니와 어금니는 아예 빠져버렸고 치아 곳곳이 시커멓게 썩었다. 원태씨는 비어있는 앞니 사이로 혓바닥을 내미는 버릇이 있다 보니 곧잘 입술을 씰룩거리곤 했다.
현재 부모도 원태씨의 병은 알고 있지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어떻게 비용을 마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넋을 놓고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증세가 있어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도움을 받는 것도 꺼린다. 소득이라고 해야 기초수급비로 받는 70만원가량이 전부다.
누나 김씨는 "워낙 가난하게 산데다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다 보니 업신여김을 많이 받은 것이 가슴에 사무쳐서 아무도 믿질 못하게 된 것 같다"며 "이웃과의 교류도 없고 의존할 사람도 없다"고 했다.
모자란 동생이지만 그래도 선미씨는 동생이 제발 낫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시골에 사느라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친구 하나 없이 살았던 동생이 정말 즐겁게 한번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불쌍한데, 가난 때문에 수술조차 받지 못한다면 너무 가엾잖아요." 누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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