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행, 풍경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

2박3일, 저렴하고 알차게 일본 즐기기

"아빠는 왜 혼자만 해외여행 다녀?" 아들 녀석의 질문에 "일년에 한 번은 가족여행 하잖아" 하면서 간신히 면피하는 일이 벌써 여러번이었다. 이제 대학에 들어간 딸은 성인이 돼서 그런지 나의 여행 행적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데 반해,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내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늘 불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들과 조카 둘을 데리고 넷이서 여행을 떠났다. 2박3일 일정의 일본 후쿠오카 여행으로 갈 때 배에서 1박하고 일본서 하루 자고 오는 초단기 코스다.

부산에 도착하니 벌써 해는 넘어가고 부산역 광장 주위는 화려한 네온사인들로 둘러싸여 있다. 역에서는 부두 터미널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라 택시를 타고 5분여 만에 기본요금만 내고 도착했다.

배로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우선 배 안에서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어느 정도 갖고 승선할 수 있다. 우리가 이용하는 배의 이름은 '카멜리아'이며 약 2만t급으로, 승용차 41대와 52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대형 크루즈선이다. 식당, 노래방, 목욕탕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다다미방을 배정받아 저녁을 먹고 갑판 위로 올라가니 어둠이 내린 부산 야경이 한편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육중한 배는 견인선에 이끌려 서서히 출항했다. 후쿠오카까지는 배로 약 7시간 정도 걸린다. 흔들리는 배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뜨끈한 목욕탕에서 몸을 반쯤 담갔다. 바다 풍경을 보면서 밤새 배에서 뒤척인 피로를 말끔히 풀어버리니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출입국 담당 직원들이 출근할 때까지 배에서 기다려야 한다. 입국 수속을 받는 과정에 한국인들은 입국 수속 용지에 추가로 한자 이름을 쓰는 난이 있다. 한국인(중국 사람도 동일하다고 함)은 일본 입장에서는 엄연히 외국인이며, 서양인들은 쓰지 않는 사항이다. 영문으로 쓰면 됐지 왜 꼭 한자로 이름을 써야 하느냐고 출입국 담당 직원에게 따졌더니 무조건 적으라고 했다. 은근한 고집이 발동해 영문 이름만 정확히 기입한 뒤 한자는 쓸 줄 모른다며 버텼다. 직원은 내 여권을 다시 주면서 줄 맨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한문으로 이름을 적고 입국 도장을 받았다. 입국부터 느낌이 영 꿀꿀했다.

택시를 타고 10여분쯤 거리에 있는 하카타역 주변 피콜로 하카타 민박집 4인실을 하루 10만원 정도에 잡았다. 하카타역 건물 바로 뒤에 있는 1층 음식점에서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일본 라면을 한그릇씩 먹고 시티투어에 나섰다.

하카타역 정문에서 왼쪽에 큰 건물이 하나 있는데, 도로를 물고 있는 건물 1층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안내에서 시티투어 하루 통행권을 약 1만원 정도에 판다. 시티투어 버스는 후쿠오카 주요 관광지를 순환하며 운행하는 버스로 일반 버스와 달리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승차장도 초록색 긴 막대로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버스는 30분마다 운행하므로 여행자라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한글 안내문과 팸플릿도 있어 초보 여행자라도 전혀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후쿠오카의 유명한 축제이자 일본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기온 야마가사'의 중심지인 구시다 신사. 기온 야마가사는 인형과 전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가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로 그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때문에 후쿠오카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신사에서는 마츠리에 사용되는 장식 수레를 볼 수 있다. 이곳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돼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여기서 일본 전통 결혼식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신사에서 결혼식을 많이 한다고 한다. 양가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기념촬영을 하며 연방 싱글벙글하는 신랑신부의 모습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모치 해변 바로 뒤에 있는 후쿠오카 타워는 1989년에 지어진 건물로 외관은 약 8천장의 반투명 거울로 덮여 있다. 7천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건물 내부와 외부 풍경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후쿠오카 타워 바로 뒤편 작은 공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벼룩시장이 열려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

약 2.5㎞길이의 모모치 해변은 해변공원과 부드러운 모래로 후쿠오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연중 붐비는 도심에서 제일 가까운 아름다운 해변이다. 모모치 공원의 으뜸은 단연 마리존이다. 이곳은 일본 최초로 인공 지반 위에 만든 해상 리조트 시설로 건축물과 레스토랑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으며 사시사철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어스름한 저녁에 하카타역으로 다시 돌아와 일인당 약 3만원 정도의 가격에 고기와 해산물을 2시간 동안 무한리필한다는 식당을 어렵게 찾아갔다. 주로 일본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식당인지 젊은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식당은 이미 만원이라 예약을 하고 30여분을 기다려 자리를 안내받았다.

조카 둘 중 하나는 고등학생이고 하나는 올해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이다. 네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육류(고기) 12인분과 해산물 10인분 이상을 해치웠다. 어디 그뿐이랴. 공짜로 무한리필하는 500cc 생맥주를 20잔 이상 마셔 버렸다. 바로 옆 테이블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20대 초반의 남자와 일행들은 우리가 먹은 음식 양에 놀랐는지 연방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더니 급기야 같이 기념 촬영을 하자고 했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사진을 남긴 후 민박집으로 들어와 편안한 마음으로 누우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나 혼자 여행할 때 늘 불만이던 아들 녀석의 표정이 한없는 존경 모드로 바꿔져 있었다. 역시 아버지로서의 뿌듯함과 위엄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불가피한 것 같았다.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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