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리어답터 '입소문' 너무 믿지는 마세요

제품 구매의 잣대 부상 타인의 평가·리뷰

한 가전업체의 주부체험단 발대식 모습.
한 가전업체의 주부체험단 발대식 모습.
한 가전업체의 주부체험단 가족들이 모여 제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 가전업체의 주부체험단 가족들이 모여 제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파워 블로그
파워 블로그 '얼렁뚱땅 얼리어답터'

온라인 쇼핑몰에 자주 접속하는 주부 박주영(31·대구 두산동)씨는 제품을 사기 전에 꼭 챙기는 것이 있다. 다른 이용자들의 평가나 리뷰를 읽어보는 것. 타인의 평을 통해 품질은 어떤지, 배송은 빠른지, 사용해본 결과는 어떤지, 혹시 불량품이 배달되지는 않았는지 등 알토란 같은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가나 리뷰가 없는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뿐 만이 아니다. '대구맘'이라는 주부 커뮤니티에 수시로 들어가 자신이 구입하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다른 제품은 없는지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얻는다. 박씨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평이 좋은 제품을 구입해 왔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며 "미리 사용해본 사람들의 리뷰는 제품 구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리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주말 극장표를 예매할 땐 먼저 누리꾼들의 영화평을 살펴보고, 인터넷 쇼핑을 할 땐 구매자 평을 가장 먼저 확인한다. 한줄의 리뷰라도 제품 구매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요즘은 최신 IT제품이나 생활용품 등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써본 뒤 사용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상세하게 올리는 이들도 늘고 있다. 기업들도 제품 출시에 앞서 체험단을 모집하고 인기블로그 운영자에게 제품을 홍보하는 등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리뷰나 평가로 인해 신뢰성에 의문이 생기기 때문. 일부 블로거(블로그 운영자)는 기업과 결탁해 홍보성 리뷰 등을 올려 광고대행자로 전락하는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리뷰로 통하는 세상

주부 김숙정(56·대구 지산동)씨는 이른바 '입소문'에 상당한 믿음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진공청소기를 구입하면서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 수많은 종류의 진공청소기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은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단순히 각 회사의 광고에만 의존하기에는 뭔가 찝찝했다"며 "어떤 제품이 좋더라는 입소문을 듣고 구입하면 걱정거리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인터넷을 통해 사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사용기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 박주영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에 질문하면 즉각 그에 대한 평가가 뒤따른다"며 "바쁜 현대인들에게 리뷰는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했다.

때문에 '리뷰슈머'(인터넷에 리뷰를 올리는 소비자)가 최근 새로운 소비 주도층으로 급부상했고 나아가 마케팅의 신(新)권력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뷰사이트도 인기다. 리뷰사이트는 3, 4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10여 곳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리뷰사이트 '프리로거'의 권우철 이사는 "과거에는 전문 리뷰어가 있었지만 지금은 블로거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블로거들에게 체험해볼 수 있는 제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활동 정도에 따라 블로거들의 등급을 나누는 등 체계적으로 리뷰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IT제품의 경우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사용해 보고 평가를 내리는 소비자)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의 입소문은 제품의 성패를 좌우하기까지 한다. 기업들도 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휴대폰 '햅틱1' 출시를 앞두고 일부 얼리어답터들로부터 터치 방식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출시 시기를 늦추고 자주 쓰는 통화와 종료 버튼 기능을 개선했다. 최근 애플사의 아이폰 인기도 얼리어답터들의 호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체험단 경쟁률 치열

리뷰가 구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들도 리뷰 마케팅에 한창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체험단 모집. 생활용품이나 가전제품, 식품 등을 중심으로 체험단을 모집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단 활동이 활발하다.

매년 주부를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하고 있는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체험단으로 선정되면 제품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활동 점수가 좋으면 무료로 제공하거나 일반 구매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특권을 준다"고 말했다.

당연히 체험단으로 선정되기 위한 경쟁률도 높다. 한 업체의 냉장고 체험단 모집은 지난해 33대 1의 경쟁률을 보인데 이어 올해는 113대 1을 기록했다. 권우철 이사는 "제품의 종류나 기업의 브랜드에 따라 경쟁률은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제품 위주로 체험단을 모집하기 때문에 최소 몇십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한다"고 말했다.

체험단이 주부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하면서 주부 커뮤니티나 카페를 중심으로 '체험단 되는 법' '체험단 활동기' 등 다양한 노하우도 올라오고 있다. 화장품, 정수기 등 몇 개 제품의 주부 체험단으로 활동했다는 이모(33·대구 신서동)씨는 "평소 사고 싶어도 가격 부담 때문에 엄두를 못 내던 제품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사용해 보고 꼼꼼히 장·단점을 적어 인터넷에 올리면 되기 때문에 주부에게 안성맞춤인 일"이라고 했다.

◆지나친 상업화 부작용

리뷰슈머로 대표되는 블로거들은 직접 광고보다 신뢰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의 좋은 표적이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유착돼 자신의 블로그를 배너광고로 도배하고 홍보성 리뷰를 올리는 블로거들도 꽤 있다. 최근 블로거들의 지나친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 파워 블로거는 "기업들이 블로그를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물건이나 돈에 유혹당해 넘어가는 블로거가 적잖다"며 "일부 블로거는 돈을 벌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구 최대 주부커뮤니티 대구맘 운영자도 "예전에 한 대기업으로부터 5억원을 줄테니 카페 운영권을 넘기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댓글 알바'나 '블로그 마케팅 브로커' 등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뷰슈머들의 지나친 상업화를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발적인 자정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박한우 교수는 "인터넷은 자율공간이기 때문에 규제보다는 평판시스템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검색엔진들이 주도해 대대적인 정화운동을 펼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광고인지 아닌지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이용자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