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옷들이 '정가'(定價)에 팔려나가는 것은 아니다. 제값에 팔리는 것은 고작 10~20% 내외. 나머지 대부분의 옷들은 백화점 세일기간이나 이월상품 기획전, 아울렛, 심지어는 땡처리에서 소진되기도 한다. 옷값은 이 모든 비용을 평균해 결정된다. 처음 제값에 옷을 구매하는 고객이 땡처리에서 10분의 1 내외의 가격으로 구매하는 고객이 지불해야 할 값까지 대신 내는 셈이다.
하지만 제값을 준다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신상'(신상품)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역시 가격 못지않은 '효용'을 소비자에게 가져다주기 때문. 비싼 신상을 살 것인가, 땡처리 제품을 구매해 절약의 미학을 실천할 것인가는 순전히 고객의 취향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옷값의 일대기
10만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봄 신상품 티셔츠를 가정해보자. 통상적으로 백화점 임대 수익 25~30%, 매장 관리자 수익 10% 내외를 제외하면 생산에서 판매장 도착까지의 경비가 가격의 60%를 차지한다. 디자인과 유통비용, 섬유가격 등을 합친 제작비가 6만원 선이라는 이야기다.
이 봄 신상품 티셔츠는 봄이 채 시작되기도 전인 2월 매장에 진열된다. 백화점 의류매장은 시즌보다 약 2, 3개월 앞서기 때문이다. 상품은 3월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포근해지면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올해처럼 기온이 낮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다 보면 정상 판매기간 동안 판매가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시기적으로 3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바겐세일 품목으로 분류가 된다. 할인비율은 생산 물량에 따라 달리 결정된다. 세일기간 동안 완판이 가능하다면 할인율은 20~30% 수준이 되지만, 재고가 많다 싶을 경우 50%까지 할인폭이 높아지기도 한다. 바겐세일 품목으로 넘어가게되면 백화점 수수료와 중간관리자 수수료도 각각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바겐세일 기간에도 판매가 완료되지 않고 시즌이 막바지에 들어가 판매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되면 이 상품은 본사 또는 물류센터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취합된 상품은 다시 유명 아울렛 또는 백화점의 이월상품행사, 인터넷 쇼핑몰 등을 통해 통상 60~80% 내외의 할인된 가격에 판매가 된다. 여기서도 판매가 되지 않은 제품은 균일가 상품전, 바자회 등을 통해 마지막 판매 기회를 찾게 되며, 결국에는 기부품목 또는 폐기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제값주고 옷 사는 사람은 누구?
김희연(28·대구 수성구 고산동)씨는 신상 애찬론자다. 그는 "세일 상품을 사려고 마음먹고 와도 막상 신상이 더 눈에 들어와 구매제품의 대부분이 신상품"이라고 했다.
동아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한 여성브랜드 매니저는 "고객 중 15% 정도는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매장 방문시 마음에 드는 신제품을 즉시 구매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각 브랜드마다 별도의 고객관리 명단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고객들은 트렌드에 한발 앞서가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긴다"며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각 매장마다 50~100여명의 고정 고객을 관리하며 신상품이 들어오면 전화나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신상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신상품이 세일품목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신상품을 구입했을 때 느끼는 '자기 만족도'가 세일상품이나 이월상품을 구입하고 얻는 경제적 이득에 따른 효용보다 큰 것도 신상품을 고집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특히 이런 '신상품' 중심의 소비 경향은 40·50대에 비해 20·30대 여성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에서 7년째 숍매니저로 근무하는 박선영씨는 "20·30대 젊은층들은 신상품 출시 주기나 상품의 특징 등에 대해 판매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지난겨울 시즌에는 아직 매장에 진열되지도 않은 신상품 견본에 대한 상품정보를 직접 출력해 해당제품 구입을 문의한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옷 싸게 구매하는 기술
옷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많은 소비자들이 백화점의 '이월상품'이나 '기획상품'에 눈독을 들인다. 브랜드 옷을 좀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매력 때문. 하지만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싼 옷은 저렴한 만큼 소재나 바느질, 디자인 면에서 조금의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월상품은 말 그대로 철이 지나거나 지난해 판매되던 상품을 말한다. 최신유행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보관이나 현재의 유행 패턴 등을 고려해 선택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원하는 치수나 색상 등의 물량이 많지 않거나 행사 종료 후에는 반품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단점을 꼼꼼히 체크해 구매한다면 싼 값에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기획상품을 살 때는 주의해서 꼼꼼히 살펴야 한다. 판촉을 위해 저단가로 주문·제작되는 일종의 미끼상품이다 보니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기획상품은 원단부터 부자재, 바느질, 원산지까지 정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은 것. 기획상품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소재나 옷의 마무리 상태 등을 꼼꼼히 살펴 사는 것이 좋다. 기획상품전 역시 한시적 행사이므로 반품이나 수선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신 유행 스타일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쇼핑의 고수'들은 "기획상품보다는 이월상품을 사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매장에서는 기획상품과 이월상품은 구분하지 않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따지기가 어렵지만, 제조일자를 잘 살피면 눈치챌 수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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