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잡는' CCTV 설치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들어 강호순의 부녀자 연쇄살인, 김길태의 여중생 성폭행 살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방범용 CCTV 설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들도 앞 다퉈 CCTV 설치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CCTV 설치만으로는 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건축이나 도시 설계 때부터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을 만드는 이른바 '셉테드'(CPTED)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CCTV 설치 열풍
최근 대구 북구 산격지구대는 차량절도범을 잡았는데 방범용 CCTV가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절도범은 차량을 대형소매점에 주차하고 도주했다. 현장에 쫓아간 경찰은 인근 아파트들을 찾아 CCTV를 모두 뒤졌다. 한 아파트 CCTV를 통해 절도범과 인상 착의가 흡사한 인물을 발견했고 각 동을 일일이 검문검색해 범인을 잡았다.
이처럼 CCTV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사례는 요즘 흔한 일이다. 경찰들도 사건이 발생하면 주변 CCTV부터 조사한다. CCTV가 범죄예방에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CCTV 설치를 확대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몇년 사이 어린이 대상 범죄가 급증하면서 학교나 주변에 CCTV를 설치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
현재 대구에는 1천1대의 방범용 CCTV가 설치돼 있다. 지난해 말(890대)에 비하면 몇달 사이에 크게 늘었다. 올해 CCTV 설치 예산도 40억원이 책정돼 있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요즘은 과거에 비해 CCTV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우선지역부터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경찰은 CCTV 설치 민원이 제기되면 그에 따른 예산을 확보하고 우선설치 지역을 결정한다. 현장답사를 통해 어느 구역 설치가 적합한 가를 정하고 주민공청회를 개최해 최종적으로 주민동의서를 받는 절차를 거친다.
지난달에는 각 경찰서마다 중앙관제센터를 완공해 CCTV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CCTV 감시가 지구대별로 이뤄져 일반인들이 쉽게 CCTV 모니터를 볼 수 있었고, 사생활 노출 위험이 존재했다. 하지만 경찰서에 감시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외부 노출 위험이 없고 중앙통제에 따른 체계적인 감시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시·도별 방범용 CCTV 설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CCTV 1대당 관리 인구는 2천798명으로 다른 특별·광역시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CCTV 만능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방범용 CCTV가 범죄 예방에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기광도 교수는 "CCTV가 범죄 예방과 범인 잡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면서도 "감시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의 범죄는 줄이지만 영역 밖의 범죄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결국 특정 구역의 범죄는 줄일 수 있어도 도시 전체의 범죄총량은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고정식 CCTV는 강력범죄자가 위치를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그 구역을 피해 범죄를 일으킬 때는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범죄를 저지른 현장은 주로 경기 화성, 군포, 수원 등 도시와 농촌이 혼재해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차량 통행과 인적이 드문 지역이었다. 강호순이 여대생을 납치한 군포의 버스정류장은 오가는 차량이 드물고 CCTV는커녕 인도를 비추는 보행자 조명조차 없는 어두운 장소였다.
CCTV 설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한국셉테드학회 강석진 사무국장은 "정확히 어떤 구역에 설치하고 어떻게 설치하느냐 등에 대해 가이드라인이 없어 CCTV 효과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적잖다"며 "CCTV는 인근에 조명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조명 없는 곳에 CCTV가 설치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천차만별인 성능도 CCTV 효과를 감소시킨다. 방범용 CCTV는 최소 41만 화소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화질이 떨어져 줌인을 했을 때 화면이 깨지는 경우도 많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설치되는 CCTV는 성능이 좋은 편이지만 예전에 설치해 노후한 CCTV나 일부 CCTV는 화면을 확대했을 때 화질이 많이 떨어져 인물 식별이 어렵다"고 했다.
◆셉테드가 뜬다
CCTV의 한계점에 드러나면서 새롭게 대두되는 것이 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하 셉테드)다. 셉테드란 도시를 설계하거나 건축물을 지을 때부터 범죄 실행이 어렵게 환경을 조성하고, 거주자에게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범죄예방 환경 설계를 말한다. 엄밀히 말해 CCTV도 셉테드에 포함되지만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범죄예방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셉테드를 적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 2008년 입주를 시작한 '은평뉴타운 1지구'는 설계부터 셉테드 개념을 일부 도입했다. 고립지역을 피하고 자연 감시가 가능한 공간에 어린이 놀이터를 설치하고 지하주차장에 비상벨을 마련하는가 하면 보행자 중심의 상가거리 등을 조성했다. 현대건설도 영종도 도시개발사업이나 당진 송악 도시개발사업 때 범죄예방기법을 접목하는 '크라임 프리'(Crime Free) 디자인을 적용할 계획이다. 건물이나 조경을 시야가 최대한 확보되도록 배치하고 차로와 보행공간을 완전 분리시키며 단지 내 보행자 위주의 지능형 조명을 설치한다. 또 지하주차장에 사각지대를 없애 범죄를 사전에 차단시킨다. 판교신도시에도 셉테드가 적용된다. CCTV 설치와 함께 보행자 얼굴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가로등 높이를 낮추고 외부에서 계단 같은 건물 공용 부분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휴식공간은 주거지 중심부에 설치하고 범죄자의 도주로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쿨데삭'(Cul De Sac) 설계도 도입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셉테드 지침을 마련, 시내 재정비나 뉴타운 개발 때 적용하도록 했다. 우선 지하주차장에 비상벨을 최대 25m 간격으로 설치하고 보통 차도를 따라 설치하는 지하주차장 조명을 주차구역 벽면에 설치하도록 했다. 각 동 출입구 도로 주변에 키가 작은 나무를 심어 출입자가 쉽게 관찰되도록 했고, 경비실 창문은 시야 확보에 지장이 없는 구조로 계획하도록 했다. 또 담은 반드시 투시형으로 설치하고 조명은 밤에 10m 거리에서 상대방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밝기가 되도록 했다. 어린이 놀이터는 각 세대에서 내려다볼 수 있고, 시야가 탁 트인 공간에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셉테드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라 수도권 위주로 일부 적용되고 있을 뿐 지방에는 이 같은 시도가 전무한 상태다. 강석진 사무국장은 "아직 국내에는 셉테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강제할 수 있는 법규가 없어 활성화가 안돼 있다. 하지만 셉테드는 주민 만족도를 높이고 비용 대비 효과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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