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을 때는 탤런트 김민정, 말하기 시작하니 탤런트 윤유선'.
대구 출신의 MBC 김경화(33·여) 아나운서를 MBC 사옥과 여의도 공원 그리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4시간여 동안 만나 이야기하며 든 생각이었다. 김 아나운서에게 동의를 구하자 "저랑 닮은 두 여자 탤런트 얘기를 많이 들었고,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답했다.
이야기를 계속할수록 김경화 아나운서가 갖고 있는 숨은 매력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났다. 벌써 아나운서 11년차, 두 딸의 엄마이자 '아이 언어 성장 프로젝트'의 저자, 떠오르는 육아 강사, 2010년 다보스 포럼 한국 측 사회자, 연세대 응원단 아카라카 출신, 봉사활동에도 빠지지 않는 따뜻한 감성, MBC 파업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 열혈 직장인 등 다방면에 걸친 활약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는 궁금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요?" 김 아나운서는 시원스레 답했다. "어머니가 나쁜 습관이 생기거나 어떤 일을 어정쩡하게 시작하려 할 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요. 반대로 얘기하면 티끌 모아 태산이 되듯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무슨 일이든 하면 확실히 하는 습관이 절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어 그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주신 사랑, 또 어머니가 제게 주신 사랑, 제가 제 두 딸에게 주는 사랑이 점점 커지는 크레센도(crescendo)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 사회에서 제가 받은 것을 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말 자신의 첫 저서인 '아나운서 김경화의 아이 언어 성장 프로젝트'를 발간한 김 아나운서를 좀 더 파헤쳐 보자.
◆서연·서진 두 딸의 엄마
대학교 4학년 때 소개팅에서 만난 여덟 살 연상의 한 남자와 4년 반 동안 열애하다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두 딸 서연(6)이와 서진(3)이를 낳았다. 지상파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가 최고의 커리어우먼이자 1등 신붓감으로 여겨지고 재벌가 2세나 스포츠 스타, 연예인과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데 비추면 김 아나운서의 사랑은 별나지 않다. 현실도 녹록지 않다.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두 딸의 엄마 노릇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때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힘든 날도 있었다.
하지만 김 아나운서는 긍정적 마인드와 에너지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육아의 달인이자 모범적인 커리어우먼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자신의 책에서 '0~5세 아이의 언어 습관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주고 의견을 존중해줄 때 올바른 언어 습관이 생기고 창의력, 사고력, 사회성, 인성이 올바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첫째 딸 서연이를 낳은 후 아이의 언어 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고, 전문 서적을 읽고 상담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다"며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언어 교육에 관한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또 자신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일촌 클리닉'에서 만난 오은영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이 책의 감수를 맡아 아이들의 인성을 길러주는 언어 습관을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도 소개했다.
◆'대구' 피가 흐르는 찐한 여자
김 아나운서는 인터뷰를 도중 "대구가 많이 침체돼 있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여성이 결혼할 상대가 별로 없다죠"라고 걱정을 했다. "그렇긴 한데, 서울서도 고향 걱정을 하나 보네요"라고 되물었더니 "대구에 사시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대구가 살기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고교 졸업 후로는 대구에서 생활하지 않아 서울 사람이 됐지만 내 피는 대구와 구미에서 올라온 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아나운서는 197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구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회사가 있던 구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다시 대구로 내려와 내서초교-원화여중-정화여고를 졸업했다. 1996년 연세대 의류환경학과에 입학했고 2000년에 MBC 아나운서가 됐다. 실패는 없었다. 모든 게 막힘 없이 이뤄졌다. 방송국 아나운서만큼 되기 어렵다는 연세대 응원단 '아카라카'에도 무난히 선발돼 1년 동안 연세대가 하나 되는 응원문화를 이끌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여대생의 에너지로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대차다. 대통령이 뭐라해도 별로 떨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최근 한 일화가 재미있었다. 김 아나운서는 올해 1월 이명박 대통령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 한국 측 사회자로 참석했는데, 갑자기 이 대통령이 "벨기에 왕세자분이 오셨다"고 소개해 달라고 했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발언에 의전 영어를 잘 몰라 멈칫했지만 옆에 있던 외교부 의전 담당에게 얼른 물었다. 넘겨준 메모를 받아 "Your highness, The Royal crown prince and princess of Belgium"이라고 유창하게 소개했다. 다급한 마음에 어설픈 영어로 소개했다가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냉정을 잃지 않고 정확히 물은 뒤 소개한 것. 당당한 대구 여성의 재치라 아니할 수 없었다.
◆김경화와 여의도 공원 토크(talk)
김 아나운서와 여의도 공원에서 사진 찍을 장소를 물색하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이름 개그인데 혹시 별명이 '간경화'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안 그래도 초등학교 때 별명이 간경화였는데 그런 썰렁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10여년간 방송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뭐냐고 묻자 "2년 6개월 동안 진행한 '섹션TV 연예통신'과 '와우! 동물농장'(1년 6개월), '일촌 클리닉'(1년), 현재 진행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이 내세울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답했다. 이어 갑자기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제가 '뽀뽀뽀' 19대 뽀미 언니인 것도 잘 몰랐죠?"라고 했다.
기자가 "부부 사이에도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데 경상도 남자에게는 쑥스럽다"고 하자 그는 "바뀌어야 한다. 부모의 대화는 자녀의 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부부 사이에도 모든 싸움이 말 때문에 일어나며, 아이에게도 존댓말로 대해야 좋은 인성이 가꿔지고 가정이 화목해진다"고 일침을 놨다. 또 김 아나운서는 "경상도 남자들! 무뚝뚝해 보여도 재미있고 정이 많은 걸 알지만 부드럽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세요"라고 조언했다.
"대구에 자주 오느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이 서울에 자주 올라와 일년에 두세번밖에 가지 못하지만 앞으로 분기에 한번씩은 갈 것"이라며 "육아나 말하는 법에 대한 강연을 대구에서 하고 싶으니 초청해 달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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