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사. 먹일 사(飼)와 기를 육(育), 그리고 스승 사(師)가 합쳐진 단어. 사전적 의미는 '가축이나 짐승을 기르고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번 체험은 사육사. 동물들에게 부모와 같은 그들의 생활이 어떤지 보여줄 겸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까지 기지개를 켜는 봄 풍경도 전할 겸 12일 달성공원을 찾아갔다. 사육사들은 매일 오전이 가장 바쁘다. 동물 분뇨를 치우면서 방사장을 청소해야 하고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관람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달성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코끼리 분뇨 청소' 임무가 떨어졌다. 코끼리는 사육사들이 대하기 꺼리는 동물 중 하나라고 한다. 방사장을 둘러보자 굳이 꺼리는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여기저기 시커먼 분뇨 더미가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 코끼리 두 마리가 쏟아내는 분뇨량은 하루에 약 250㎏. 성인 4명의 몸무게와 맞먹는다. 75ℓ짜리 대형 플라스틱 통으로 대여섯번을 채우고 비워야 한다. 여기저기 쌓인 걸 담아 특수차량에 실어 옮긴다.
코끼리는 달성공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물 중 하나다. 온순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육사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맹수만큼은 아니지만 코끼리는 상당히 거칠고 포악한 동물이다. 특히 수컷이 더 난폭하다. 사육사조차도 청소하거나 먹이를 줄 때 코끼리와 절대로 같이 있지 않는다. 별도로 내실에 코끼리를 가두어놓은 뒤에야 이것저것 준비한다. 호랑이나 늑대 등 맹수들을 대할 때와 다르지 않다. "가끔 상아로 땅을 파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섬뜩할 때가 있어요. 관람객이 먹이를 주면서 약을 올리기라도 하면 화가 나서 코로 물을 뿜어대기도 합니다."
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방사장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흩어진 분뇨 더미. 얼핏 봐도 10여곳이었다. 몸무게가 5t이나 되는 코끼리의 분뇨는 한마디로 스케일이 달랐다. 한 더미를 치우는 데도 꽤 힘이 들었다. 쓸어담고 쓸어담고…. 어느새 숨이 차올랐다. '이걸 다 치우다가는 지쳐서 다른 곳 체험을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안쓰럽게 쳐다보던 사육사가 그만하라고 말리지 않았으면 코끼리 방사장 청소로 체험을 끝낼 뻔했다.
다음은 먹이주기 체험을 해 보기로 했다. 주방으로 향했다. 사육사를 따라가다 주방 옆에 있는 불곰 내실을 잠시 기웃거렸다. 내실 안에는 불곰 암수 한 마리씩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쇠창살이 아니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사육사가 "쇠창살 가까이 가지 마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 놈들 진짜 위험해요. 사육사 2명을 국가유공자로 만든 놈들이에요." 그 사이 수컷 한 마리가 사람 얼굴보다 더 큰 손으로 쇠창살 문을 밀고 방사장으로 걸어갔다. 순간 아찔했다. 몇년 전 불곰우리를 청소하던 사육사가 불곰에게 물렸다는 기사가 오버랩됐다.
주방에는 배추와 닭고기 등 각종 식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종류만 36가지다. 공원 측은 대형식자재 업체와 1년 계약을 통해 싱싱한 식자재들을 들여온다. '아무래도 사람이 먹기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식자재를 들여오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육담당 조유정(43·여)씨가 한번 먹어보라며 사과를 내밀었다. 조씨는 기자의 생각을 눈치라도 챈 듯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더 깨끗하고 품질 좋은 식자재가 들어온다"고 했다.
먼저 도마 옆에 잔뜩 쌓인 배추썰기를 해 보라고 했다. 배추는 잘게 썬 뒤 사료나 당근 등 7, 8종의 식자재와 섞어 조류의 먹이로 준다. 식칼로 배추를 반으로 가른 뒤 잘게 썰어야 하는데 자꾸만 굵게 썰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육사가 썰었던 일정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조리를 담당하는 사육사는 더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더우면 동물들도 입맛이 떨어져 먹이를 잘 먹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얼음에 섞어 주거나 어린애 밥 먹이는 엄마처럼 어르고 달래 먹여야 한다.
동물들 가까이서 먹이를 줄 수 있는 곳은 사슴 방사장뿐이었다. 맹수는 말할 것 없고 원숭이나 얼룩말 등도 잘못 접근했다가는 공격 당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사슴 방사장으로 향하는 동안 견학온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들은 동물을 볼 때마다 종류를 하나하나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이들의 청명한 목소리가 조용했던 달성공원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 했다. 망토 개코 원숭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조씨가 한마디 했다. "저놈은 정이 안 가요. 얼마나 더러운데요. 자기가 배출한 분뇨를 손으로 찍어 관람객들에게 던지기도 하고 물을 품었다 뱉기도 해요. 달성공원의 악동이죠."
사슴 방사장에는 꽃사슴과 일본사슴 등 여러 종류의 사슴들과 라마가 섞여 있었다. 먹이가 잔뜩 담긴 통을 손수레로 옮기자 사슴들이 하나라도 먼저 먹으려고 수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야물야물 먹는 모양이 귀여워 가까이 다가갔더니 겁을 내고 이내 뒷걸음을 쳤다. 배가 고팠던지 먹이를 한움큼 쥐어 입에 대주자 야금야금 씹어 넘겼다. "사슴들이 겁은 많아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순한 동물이 아니에요. 자기들끼리 한번씩 붙으면 그야말로 거품 물고 싸우더라고요. 옆에 있는 타조도 위험한 동물이에요. 사육사가 옆에만 가도 발차기를 하죠. 그 세기가 엄청나 가슴에 맞으면 뒤로 넘어져 한동안 숨을 못 쉴 정도죠."
조씨는 관람객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제발 비닐이나 종이를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먹고 항문이 막혀 죽는 사슴들이 적잖거든요. 먹이는 우리가 충분히 주니까 아예 먹을거리를 던져주지 말았으면 해요."
공원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비둘기. 어떻게 먹이 냄새를 맡았는지 사슴 방사장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비둘기는 죽여도 줄지를 않네." 깜짝 놀라 쳐다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씁쓸했다. "비둘기는 공원의 골칫덩어리이죠. 지난해 6월부터 유해조류로 지정돼 잡아서 죽이라고 합니다. 관람객이 많을 때는 보기에 안 좋으니까 뜸할 때 긴 뜰채로 잡아 약품을 사용해 죽이죠."
마지막으로 부화장에 가 보기로 했다. 부화장은 조류들이 수시로 낳는 알을 가져와 온도와 습도를 최적화시킨다. 보통 30~37℃ 정도의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부화기의 굉음을 참고 안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알들이 놓여 있었다. 색깔과 크기가 천차만별이었다. 부화가 되면 부화장 한켠 새장에서 키워 다시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방사장으로 보낸다.
"웬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육사를 하기 힘듭니다. 매일 청소하고 먹이 주고 보살피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자기 자식을 키우는 만큼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사육사들은 달성공원 시설이 너무 노후했다며 하루빨리 공원이 이전되기를 바랐다. 사육사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물었다. "동물들의 탈출 위험이죠. 맹수의 경우 방사장을 빠져나와 탈출하면 인명 피해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죠. 매일 철문이나 쇠창살의 잠금 장치를 수십번씩 확인해요. 강박관념이 심해 악몽도 자주 꿉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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