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103년의 역사와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척곡교회(등록문화재 제257호). 봉화군 법전면 소재지에서 10여분쯤 차를 타고 산길을 달리면 오른쪽 산 아래 작은 십자가를 이고 있는 허름한 집 같은 건물로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교회가 있는 마을은 고작 5채 남짓한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첩첩산중의 궁벽한 산골이다.
척곡교회는 9칸짜리 정방형 기와집 예배당과 6칸짜리 초가의 명동서숙 건물로 대한제국 탁지부(지금의 재경부) 관리(당시의 주사)를 지낸 고 김종숙(1874~1956) 장로에 의해 1909년 3월 29일 세워졌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관직을 버리고 처가가 있던 봉화 유목동으로 낙향, 1907년 몇몇 신자들과 기도실을 만들어 운영하다 척곡교회를 일으켰다.
이례적으로 정사각형(72.8㎡) 형태이고 신자들의 교육 기관인 명동서숙(40.6㎡)도 그대로 남아있다. 김 장로의 손자이자 이 교회의 지킴이인 김영성(82) 장로는 "참의 승진이 예정되어 있던 할아버지가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설교에 감흥을 받아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며 "일제의 사슬을 끊고 나라가 독립하기 위해선 야소교(예수교)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낙향했다"고 말했다.
예배당은 원래 맨 마루 바닥과 기와 지붕이었으나 나중에 긴 의자를 놓고 함석 지붕으로 교체했다. 출입문은 남녀의 출입과 목사의 출입을 구분했고 남녀석 가운데엔 광목을 쳐서 목사들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해 당시 유교사상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배당 안에는 아치형 강단 장식과 강대, 신자들이 가정에서 가져온 쌀을 교회 살림에 보태던 성미(誠米'기도미) 자루가 걸렸던 못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명동서숙에는 특히 한국 교회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척곡교회 초기 세례인명부와 당회록이 남아있고 현재 경북도에 유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척곡교회를 잊지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학교 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후 2004년 낙향, 교회를 지키고 있는 김영성 장로는 "척곡교회는 경북 지역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믿음의 고향'"이라며 "이곳의 문화재를 복원하고 선교센터 건립사업과 기독교복지타운 건설 등을 추진, 한국 교회사를 다시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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