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펼쳐 'UAE원전 수주 쾌거'라는 제목을 읽었을 때 정말 소름이 쫙 돋았지요. 그 기쁨이란 말로 하기가 힘들죠. 지식경제부 출입기자들이 한달 반이라는 엠바고(일정 기간까지 보도 제한)를 지켜줬고, 우리나라는 50조원의 외자유치라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정말 그때만큼은 힘들고 고생했다는 생각을 날려버릴 수 있었지요."
김준동(48) 지식경제부 대변인은 1년 3개월 동안의 대변인 생활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휴대전화 배터리를 하루에 2개씩 써도 모자랄 정도로 통화에 시달렸고, 수첩에 빼곡히 기록된 수많은 일정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는 "그래도 즐거웠다"고 웃었다. 역대 지경부 대변인 중 3번째로 긴 '최장수 대변인' 생활을 이제 곧 접게 돼 "섭섭하다"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신산업정책국장으로 내정됐다.
대변인은 부처의 얼굴이고 입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처의 입장을 대변한다. 진중하면서도 판단이 빨라야 하고 입도 무거워야 하는데 반면 친밀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그 양날 위에서 분명한 무게중심을 잡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엠바고를 요청하면 기자단에서 보도 여부를 판단합니다. 하루 이틀의 엠바고가 아닌 몇 주, 몇 개월의 엠바고는 기자단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으면 지켜지기가 어렵지요. 말은 새어나가기 마련이거든요. 국민에게 중고차를 새 차로 바꾸면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 발표도 2주 정도의 긴 엠바고 기간이 있었는데 지켜졌어요. 그 사이 이명박 대통령은 영국 런던의 G8회의에 가서 '자국의 지나친 보호주의를 자제하자'고 요청할 수 있었지요."
제28회 행정고시 출신인 김 대변인은 산업자원부 인사계장, 규제개혁조사팀장, 전자상거래지원과장 등 요직을 거쳐 2003년 주 EU 대표부 상무관으로 3년간 벨기에 브뤼셀에 머물렀다. 그리고 3년간의 유럽 생활을 '브뤼셀에서 만난 유럽'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경험과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그의 소신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선진국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물론 부족한 것도 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에서 느낀 크고 작은 경험들을 책으로 남기자, 사람들에게 알리자. 그리고 책을 쓰면서 유럽은 자연스럽게 자기 지식이 되더라고요." 김 대변인은 '감옥과 골방'이라는 수필집을 비롯해 'EU정책 브리핑' 'EU를 알면 우리가 보인다'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소문난 '독서광'이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길'이라는 주제로 시를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학생이 '길'을 '골목' '도로' 등으로 해석해 시를 썼어요. 그때 선생님이 '어떻게 한명도 보이지 않는 길, 나의 길, 이런 생각을 못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때 뭔가가 스쳐갔죠. 나의 길은 뭔가 하고요."
그래서 그는 요즘 '길'을 다시 화두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지식경제의 요체인 이곳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나의 길'은 어떨지도 그려보고 있단다. "앞으로 살아온 만큼 살아가야 하는데 나의 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고향도 잊지 않았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고향은 늘 애틋하다. 김 대변인은 "무엇보다 대구, 경북이 잘 협조해서 행정적인 경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합심해야죠. 그러기 위해선 동남권 신공항과 포항 신항이 설립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노력할 겁니다."
김 대변인은 경북 의성군 신평면 출신으로 중률초교, 신평중, 대구 영신고, 서울대 정치학과 및 동 대학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미주리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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