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열린큰병원 엄대섭 원장

인공무릎 관절 수술 무려 4000례 돌파 '신의 손'

수술실에는 톱과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닳아서 고장 난 관절을 잘라내고 금속 관절을 뼛속에 심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다. 관절을 잘라내다 보면 말 그대로 뼈와 살이 튄다. 한번 잘라내면 돌이킬 수도 없다. 열린큰병원 엄대섭(48) 원장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신의 손'으로 불리는 인공무릎관절의 대가다. 본인은 '대가'라는 표현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고수들이 즐비한 이 분야에서 대가라는 표현은 당치도 않습니다."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가는 중요치 않다. 그를 아는 의사들조차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그의 수술 부위를 보며 '예술의 경지'라고 말할 정도다.

◆독학이나 다름없이 배운 수술

열린큰병원을 함께 운영하는 '관절경의 대가' 이호규 원장과는 대학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친구들은 '대섭'과 '호규'를 붙여서 '대규'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 단짝이 함께 정형외과에 지원했으니 주위 사람들은 걱정부터 했다. 훗날 라이벌이 되면 우정에 금이 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20년 가까이 두 사람은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다. 엄 원장은 "앞서 늘열린성모병원 시절부터 이호규 원장을 비롯한 동반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1991년 전문의를 딴 뒤 연구강사로 6개월간 동산병원에서 근무한 그는 곽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만 해도 관절수술은 엉덩이에 있는 고관절 수술이 대부분. 인공무릎관절은 레지던트 시절에도 두어번 봤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일반 정형외과 수술 외에 엄 원장의 주종목은 고관절 수술이었다. 일찌감치 깔끔한 수술 실력으로 정평이 높았던 그에게 한 간호사가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부탁해 왔다.

시어머니가 무릎이 아파 거동조차 못하는데 부디 엄 원장이 수술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 대학병원에 의뢰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간호사는 "다른 수술을 그렇게 잘 하는데 무릎관절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며 엄 원장을 고집했다.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외과의사로서 그저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인공무릎관절 수술 관련 서적은 모조리 독파했고, 수술 비디오도 외울 정도로 살폈다.

수술에 앞서 머리 속에서 '상상 수술'만 몇 차례를 했는지 모를 정도다. 독학이나 다름없이 배운 수술. "아직 자신이 없으니 통증이 심한 한쪽 다리만 우선 합시다"라며 수술에 나섰다. 엄 원장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철저한 준비 덕분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만족스런 환자는 나머지 무릎 수술도 부탁했다. 난생 처음 해 본 인공무릎관절 수술. 지금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공무릎관절 수술 4천례 돌파

엄 원장이 인공무릎관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나서다. 1996년 '동반자' 친구들과 함께 늘열린성모병원을 개원했을 때만 해도 역시 고관절 수술이 주를 이뤘다. 개원 초기만 해도 고관절수술과 인공무릎수술은 3대 1정도 비율. 한 달에 무릎수술은 고작 4, 5건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1998년 한 해 150건의 인공무릎수술을 해낸다. 대학병원 한 곳에서 일 년간 하는 수술 숫자를 개인병원에서 해낸 셈. 2001년에는 300건에 육박했고, 2004년 열린큰병원을 열기 전까지 인공무릎관절 수술 1천례를 이뤄냈다. 이후 수술 실적은 급속도로 늘었다. 올 초에는 무려 4천례를 돌파했다. 전국 모든 병원을 통틀어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경험이 쌓이면서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쌓였다. 초기만 해도 2시간씩 걸리던 수술시간은 45~50분으로 단축됐다. 그만큼 환자의 부담이 줄었고,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는 의미다. 명성이 나면서 그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한 환자가 찾아와서는 '엄대섭'이라는 이름만 믿고 찾아왔다는 겁니다. 당시만 해도 '늘열린성모병원'이라는 간판 때문에 환자가 찾아왔는데, 제 이름을 믿고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믿고 몸을 맡기는 환자가 눈물겹게 고맙다고 한다.

"지금 열린큰병원에서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하는 의사가 저를 포함해 5명인데, 늦에 온 한 분을 빼고 나머지 4명의 수술 실적이 대구경북 1~4위입니다. 저는 일찍 시작했을 뿐이고, 이호규 원장을 비롯한 세 분의 수술 실력도 이미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눈으로 배우는 것은 막지 못한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말 못할 설움도 많이 겪었다. "예전에는 수술법을 배우겠다고 찾아갈 곳도 없었고, 심지어 찾아가도 수술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창문 밖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최소한 '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데 감사하며 정말 부지런히 다녔다. 따로 불러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으로 훔쳐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공무릎관절과 관련한 학회, 심포지엄, 연수는 빠지지 않았다. 함께 병원을 연 '동반자'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존재조차 모르던 학회 관계자들이 엄 원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2003년 난생 처음으로 인공무릎관절 학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발표하게 됐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인공무릎관절 수술법이었습니다. 발표가 끝났는데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인공무릎관절의 정확도를 높이는 수술법은 국내에서 몇 사람만 시도했을 뿐. 인공관절을 집어넣었을 때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직선으로 이어져야 성공적인 수술. 각도가 3도 범위 내에 들어야 성공이다. 의사들이 느낌에 의지해 수술하는 것보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일일이 각도와 균형을 맞추면 수술 후 만족도는 훨씬 높아진다.

내비게이션 도입 이후 엄 원장의 수술 성공률은 95~97% 수준에서 거의 100%로 올라섰다. 내비게이션 수술을 하면 병원 부담이 30만~40만 원 더 든다. 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이다. "멀쩡히 더 좋은 기기가 있는데 보험이 안 된다고 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환자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도 없죠." 엄 원장에게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받으려면 5,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태어나도 정형외과 의사를 하겠습니다. 그 귀중한 몸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의사라면 만족할 만한 삶을 산 것이 아닐까요?"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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