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패션 트렌드 역시 돌고 돈다.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탔던 복고풍이 올해 역시 대세를 이끌고 있다. 옷장 속 깊숙이 처박아 뒀던 청재킷과 배바지를 꺼내고, 이스트팩(가방 브랜드)이라도 등에 매줘야 할 판이다. 촌스러운 컬러는 '과감하다'는 표현으로 재무장했다. 패션은 20~3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것이 일반론. 이에 따르면 1980년대 유행이 돌아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나 어릴 적 그 패션
1980년대 뭇소녀들의 가슴을 쥐고 흔들었던 주윤발, 유덕화를 기억하는가? 큰 잠자리 안경을 끼고 열창했던 시대의 가수 전영록은? 한때를 풍미했던 그들의 패션 아이템은 단연 '데님'(denim)으로 대표된다. 그것도 패션에선 가장 금기시 된다는 청바지에 청재킷 차림이었다.
2010년 공포의 '청청패션'(오버데님룩·상의와 하의 모두를 데님으로 입는 것)이 화려하게 귀환했다. 올봄 가장 주목받는 패션 소재로 데님이 손꼽히고 있는 것. 위아래를 모두 데님 소재로 코디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두나 속옷, 가방, 액세서리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추세다. 심지어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는 데님 드레스와 정장까지 내놓을 정도다. 진 의류가 많은 대백프라자점 6층 이지캐주얼 매장 관계자는 "데님은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올해는 유난히 인기가 높다"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20~30% 정도의 높은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청청패션이 고개를 들자 한동안 역시 촌스러움의 상징이었던 '스톤 워싱 데님'도 유행하고 있다. 물이 빠져 푸른색이 흰색으로 변해버린 나머지 얼룩덜룩한 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속칭 '돌청'으로도 불리는 스톤 워싱을 비롯해,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아이스 진'(물 빠진 흔적이 마치 흰 눈덩이들이 뭉쳐있는 것처럼 보인다)과 '디스트로이드 진'(destroyed jean·허벅지와 엉덩이 등을 일부러 찢은 듯이 보인다) 등도 다시 급부상 중이다.
백팩 패션도 돌아왔다. 현재 30대라면 1990년대 중반 학창시절, 마치 학생가방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매고 다녔던 이스트팩 열풍을 기억할 터. 최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인기 연예인과 아이돌 가수들이 백팩을 들고 나오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이스트팩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과거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해 컬러풀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해진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이스트팩을 새롭게 선보여 매월 10% 정도의 꾸준한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걸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컬러풀하고 귀여운 차림에다 긴 무릎 양말을 신는 스쿨룩도 부활했다.
◆모든 유행은 돌아온다
복고는 2000년 이후 자주 그 모습을 드러내왔다. 해마다 형태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시점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특히 2007년부터는 매년 새 시즌 트렌드를 나타내는 코드로 '복고'라는 단어가 빠진 적이 없다. 2007년에는 반짝이는 의상과 아이템의 '퓨처리즘'이 화두로 떠오르며 복고 열풍을 주도했고, 2009년에는 소위 어깨 '뽕'이라고 불리는 '파워숄더'의 부활과 헐렁한 배기팬츠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2010년에는 청청패션과 백팩, 스쿨룩 등이 복고 열풍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런 열풍의 중심에는 바로 '가요계'가 자리 잡고 있다. 70년대 후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디스코가 유행하면서 복고 댄스와 당시 유행했던 차림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고, 소녀시대의 스키니룩, 유키스의 기차놀이 안무, 빅뱅과 2NE1의 원색 옷차림 등이 80년대를 그대로 재연해 놓은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트렌드의 회귀는 유행의 주기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패션은 20~25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것이다. 시기상으로 80년대의 유행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기론이 2000년대 이후에는 무의미해졌다는 견해도 있다. 2000년대는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취사선택의 시대'라는 것. 복고가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이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트렌드가 공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왜 복고인가?
복고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 직후부터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당시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과거 추억에서 달래고자 하는 심리가 생겨났던 것. 또 과거의 자료들을 재활용해 비용을 절감하자는 논리가 위기에 놓인 기업들과 맞아떨어지면서 대중문화를 비롯해 광고, 생활용품 등 전반에 걸쳐 복고로의 회귀가 일어났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복고 트렌드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유지되자 '경제난과 무관하다'는 풀이도 제시되고 있다. 그 이유는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노스탤지어'(nostalgia)가 현대로 갈수록 더욱 짙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현대인들에게는 추억과 향수가 일종의 정신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것에 지친 현대인들이 과거의 문화와 트렌드는 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쉼표의 역할을 해 준다.
하지만 아무리 복고가 유행이라고 해도 엄마가 입었던 옛날 옷을 그대로 꺼내 입는 것은 금물. 대구백화점 마케팅 관계자는 "진정한 복고란 과거의 것을 현재에 맞게 재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과거의 트렌드를 차용하지만 현재의 내 스타일에 맞는 적절한 수정을 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복고' 트렌드를 즐기는 패셔니스트의 면모"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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