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유권자가 변해야 정치가 바뀐다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 공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현재 공천은 정당의 실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지역 유권자들은 자연스럽게 도외시되어 왔다. 올 지방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공천에만 심혈을 기울일 뿐 정작 유권자들을 홀대하는 주객전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어느 후보자가 당선되든지 '지역민의, 지역민에 의한, 지역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당선되더라도 지역 단체장이나 지역 의원들이 불법 선거나 비리에 연루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다 보니 지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게 만들었다.

조선 후기에도 줄만 잘 서면 눈앞에 감투가 떨어지는 세도 정치 시절이 있었다. 세도가의 저택은 내인거객이 끊이지 않았고 고관대작들의 후광을 업으려는 자들은 세도가에 갖은 뇌물을 바쳤다. 그렇게 벼슬 한 자리를 사들이면 뇌물 바친 돈을 메우기 위해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해서 그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나라의 근본인 백성에게 정성을 쏟지 않고 다른 어떤 것에 충실했을 때 이러한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손에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의 의식이 변한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폐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동안 영남 지역과 호남 지역은 각각 한나라당, 민주당이면 무조건 당선이 보장되는 풍토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지역감정은 엄연히 후진적 민주주의 요소이다. 현대 미디어의 발달은 정당 요인과 이슈 요인을 약화시키는 대신 후보자의 이미지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역의 경우 정당 요인이 이슈 요인이나 이미지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지역 발전을 위해 우리를 대신할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일인 만큼 기준을 정당으로만 한정시키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 아닐까.

유권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계층적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레이코프는 왜 일부 서민들이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고 일부 고학력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진보 정당에 투표하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가치 체계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프레임'(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에 근거하여 후보자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미국의 부시 정부는 '세금 구제'(tax relief)란 언어를 사용했다. 세금에 '구제'라는 말이 붙어서 세금은 고통, 그것을 없애주는 사람은 영웅, 그를 반대하는 자는 악당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투표를 한다.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사용하는 프레임의 이면에 담겨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TV토론회를 보고 후보자들 중 누가 더 능력과 도덕적 인품을 갖추었는지 꼭 비교해보고 투표하자. 바람직하지 않은 현 선거 풍토를 방조하는 유권자들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의 특성상 후보자들은 표를 쥐고 있는 유권자에 따라 변한다. 유권자가 변하면 후보자들도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 있다. 지역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지역민들이 '지역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기 때문에 늘 긴장한 채 의정 활동에 임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우리가 행사한 소중한 한 표의 가치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쏠쏠한 재미와 긴장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영국 총선에서 만년 3위인 자유민주당의 당수 닉 클레그(Nick Clegg)가 TV토론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지지율 1위의 자리로 올라섰다. 그는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는 국가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영국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말처럼 혼자의 힘만으로 어떤 일을 이루기 어려울 때가 있다. 지방자치가 그렇다. 이제는 지역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에 충실할 때다.

송석화 대구가톨릭대 취업교육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