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감각의 역사/마크 스미스 지음/김상훈 옮김/秀북 펴냄

촉각은 제국주의 노예제 정착에 위력 발휘?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감이 사회적으로 늘 똑 같은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오감의 권위 혹은 서열은 변했다. (편의상 오감에 대한 인간의 평가를 오감의 권위 혹은 서열이라고 부르자.)

이 책은 오감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근거해 사회계급, 인종과 성의 관습, 산업화, 도시화,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자아에 대한 인식, 타자에 대한 개념 등을 정리하고 있다. 책은 대체로 '이랬다, 저랬다, 이었다'는 식의 '과거형'으로 정리돼 있는데 감각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말하기 위한 지은이의 장치다.

시각은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주도적 위치를 점해왔다. 르네상스, 과학, 계몽주의가 발전하면서 합리적 진실, 이성 등 믿을 만한 것은 모두 시각에 속했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각의 권위는 더욱 강화됐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 궁중에서 시작된 발레는 정치적 사회적 볼거리였는데 거울(시각)은 발레 연습에서 필수품이었다. 이에 반해 연기자의 발소리 숨소리 즉, 청각은 최소화됐다. 고요함을 중요시한 상류층과 달리 노동자 계급은 소란스럽고, 흔들림이 심한 나막신 춤을 선호했다. 따라서 시각은 고급 감각, 청각은 다소 저급 감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1780년대 미술관 관람객은 예술품을 만지고 질감과 무게를 느꼈다. 하지만 1844년 무렵 예술 작품은 오직 눈으로 감상하는 대상이 됐다. 의학에서도 시각적 관찰을 중요시했다. 의사는 환자의 안색, 피, 소변 색깔 같은 외견에 주목했다.

그렇다고 시각이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피부색의 7/8이 백인인 사람도 흑인으로 간주되는데, 피부색만으로는 7/8이 백인인 사람과 100% 백인인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호머 플레시라는 사람은 백인처럼 보였지만 흑인으로 간주돼 유색인종 객차에 승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 명령에 불복종했고 사건은 재판까지 갔다. 피부색으로 그가 흑인인지 백인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검사보는 '시각으로는 구별이 어렵지만 흑인과 백인은 냄새가 다르다'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흑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눈에 보이는 피부색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가를 역으로 보여주었고 시각의 권위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청각은 '최고의 감각'이라고 여겨졌던 '시각'과 '저급한 감각'이라고 여겨졌던 '후각 미각 촉각'을 이어주는 감각으로 인식됐다. 문자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시각보다는 청각의 권위가 컸다. 11세기까지 영국에서는 말로 유언을 남겼고 유럽에서 법적 선언은 입을 통해 발표됐다.

인쇄 문화가 발달하면서 청각의 권위는 약화됐다. 그렇다고 청각이 맥없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의학 분야에서 청각은 상당한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르네라에네크가 발명한 청진기 덕분에 인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자의 몸속을 소리로 듣고 구체화할 수 있었다. 또 19세기 계급과 정체성,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을 알리고 정착시키는 데도 청각의 역할은 상당했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각종 영화를 통해 소리를 통해 형성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만들고 특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동화를 막는 근거가 됐다. 가령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문화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 사는 계층은 각종 향기로운 오일을 바르거나 비누로 자주 씻은 덕분에 몸에서 향기가 났고 궁벽한 계층의 사람들은 환경이 나쁜 곳에 거주하며 자주 씻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쁜 냄새가 났다. 원인이야 어쨌든, 사람들은 나쁜 냄새가 나는 사람과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계급을 구분했다.

후각의 권위는 경제 상황과 관련해 시시각각 변했다. 예컨대 관광산업이 한창 위력을 떨치던 1890년대 몬터레이에서 중국 어부들이 오징어를 잡아 말리는 냄새가 지독하다며 호텔 측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원은 백인들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1930년대 다시 정어리 악취 갈등이 생겼을 때는 달랐다. 관광업보다 어업이 도시의 주력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미각은 시각보다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미각이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파악하고 자신들과 피지배계급, 부자와 가난한 자를 분명하게 구별 지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음식을 생각해냈다. 노동자들이 비록 옷 한 벌쯤 근사하게 차려입더라도, 매일 먹어대는 음식에서만큼은 부자들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위 감각이라고 추정되던 미각이 18세기에 영국에서는 시각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미각은 상당한 권위가 있었다. 7~10세기 중국에서 술은 황제만 마실 수 있었고 부유한 사람일수록 외국 음식을 많이, 자주 먹었다. 그들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미각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확인하고 드러냈다.

촉각은 '음란하고 감정적이다' 는 개념 때문에 저급한 것으로 평가됐다. 지식인들의 촉각에 대한 저평가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촉각은 종교에서 큰 권위를 확보하곤 했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스러운 인사를 할 때 서로 키스했고, 중세 순례자들도 조각상이나 성보를 만지면서 신앙을 확인했다.

촉각은 18, 19세기 제국주의적 노예제를 다지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남부 노예주들은 단순한 피부색(시각)이 아니라 노예의 감촉적인 조건으로 노예 고용을 주장했다. 그들은 흑인의 피부는 백인의 피부보다 두껍고 거칠기 때문에 흑인이 힘든 막노동에 더 잘 어울린다고 주장했다.

근래 정치가들은 대중의 신망을 얻는 데 촉각을 많이 이용한다. 정열적으로 악수를 하고 다님으로써,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는 촉각이 가장 깊이 숨어 있었던 감각, 민감한 감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촉감을 공유함으로써 상대의 지지를 얻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는 셈이다.

지은이 마크 스미스는 감각을 연구하는 사학자로,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감을 각 장으로 구분한 덕분에 이야기는 흥미로우나, 각 감각에 대한 진술에서 때때로 모순도 발견된다. 시대별 문화권별로 각 감각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별개일 수 없음에도, 편의상 각 감각을 구분한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300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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