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迷妄

1941년 봄 독일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첩보가 소련 지도부에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그런 정보는 무려 84건이나 됐다. 일본에서 암약한 독일인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로부터는 독일의 세부 작전 계획과 함께 공격 날짜가 6월 20일이라는 정보까지 받았다. 조르게가 '찍은' 날짜는 실제 공격이 이뤄진 6월 22일과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정확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는 거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독일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코프, 티모셴코 원수 등이 침공에 대비해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독일 정찰기가 180여 회나 소련 영공을 넘나들었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는 불시착한 독일 정찰기 조종사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돌려보내기도 했다. 반면 침공 하루 전 투항해 "다음날 공격할 것"이라고 전한 독일 병사는 총살해버렸다. 스탈린은 독일 침공을 경고하는 정보를 독일과 소련의 동맹(양국은 1939년 불가침조약을 맺었다)을 와해시키려는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는 6월 14일 타스통신의 성명을 빌려 이런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소련과 독일을 적대시하는 세력, 전쟁을 더 확대 팽창하는 데 관심을 둔 세력이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것이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스탈린은 믿음이 배신당하는 순간에도 미망(迷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독일 공군이 국경선 안쪽 주요 공군기지와 민스크, 키예프, 세바스토폴 등 주요 도시를 폭격하고 있는데도 "제한된 도발 행위일 것"이라고 고집했다. 또 히틀러가 아무것도 모를 수 있으니 "베를린과 급히 접촉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 야당 의원이 국방부를 방문해 "천안함 침몰이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이나 수리 중인 미 해군 핵잠수함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며 '미군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려면 확실한 정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현재 천안함 침몰 원인은 북한 어뢰 공격으로 모아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도 당원 교육에서 이를 시사했다고 하니 신빙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반면 인터넷에 떠도는 미군 개입설은 아직 어떤 경로로도 입증되지 않은, 말 그대로 '설'이다. 확연한 증거나 정보에 눈을 닫을 때 미망은 생겨나는 법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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