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각종 인프라·親기업정책 만족, 수도권 갈 이유 없어요"

[구미산단의 힘] <상> 기업들이 구미를 찾는 까닭

구미 국가산업4단지는 오는 7월 준공을 앞두고 분양이 거의 완료돼 입주업체가 꽉 들어찼다.
구미 국가산업4단지는 오는 7월 준공을 앞두고 분양이 거의 완료돼 입주업체가 꽉 들어찼다.

▣경쟁력 있는 구미국가공단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수도권 규제 완화, 세종시 수정안 등 만만찮은 대내외적 투자 여건 속에서도 삼성, LG 등 국내 대표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체들은 꾸준히 구미지역에 투자하고 있다. 구미에 가면 무엇이 있고, 무엇을 해주기에 굴지의 기업들이 구미로 몰려드는 것일까.

수도권의 산업단지를 제쳐두고 구미국가공단으로 입주를 결정한 기업체들의 내막과 구미시가 기업 유치를 위해 쏟아붓는 노력 등 투자유치와 관련한 일들을 상·하 두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해 본다. 구미는 지난해 각종 공단 유치로 국가공단 3천300만㎡(1천만평) 시대를 활짝 연데 이어 국가산업 5단지(하이테크밸리)와 경제자유구역(구미 디지털산업지구) 등 1천600만㎡ 규모의 공단 조성을 앞둬 기업 투자유치가 또다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구미를 찾는 이유는

"구미는 기업들을 위해 모든 게 준비된 곳입니다."

지난달 12일 구미 국가산업4단지에 전기 이중층 커패시터(EDLC)용 탄소소재 생산공장을 준공, 양산에 들어간 GS칼텍스㈜와 일본 최대 정유사인 신일본석유㈜의 합작법인 PCT(Power Carbon Technology)사(社)의 서원배 사장은 구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 사장은 "구미엔 입주가 즉시 가능한 공장부지가 있고 연구기술인력 확보와 물류·관리 용이 등 각종 기업 인프라가 수도권 못잖다"고 했다. 그는 "구미공단은 기업들이 밀집해 기업 시장성이 넓고 부산항이 가까워 물류가 탁월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또 "남유진 구미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투자유치 노하우가 뛰어나고 다른 지자체에 비해 노력이 남달랐다"며 "기업 민원 원스톱 제도에 특히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 미국 엑손모빌의 일본 계열사인 토넨케미칼코퍼레이션과 도레이가 공동 설립한 4단지 내 국내 법인 EM TTK사. 이 회사는 최근 구미시가 유치한 최대 규모 회사로 3억2천500만달러를 투자,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생산공장의 1·2생산라인을 완공해 시범생산 중이다. 이 회사 홍재열 사장은 구미로 결정한 것에 대해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분리막을 판매해야 하는데 구미엔 시장성이 큰 기업이 있고, 한국시장에 쉽게 접근할 각종 인프라와 서비스를 잘 갖추고 있다"고 했다. 또 이 회사 이와모토 다카시 공장장은 "구미시는 지방정부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업기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며 "공무원들이 긍정적인 열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770억원을 추가 투자한 4단지 내 평판디스플레이 부품생산기업 LG계열 ㈜루셈의 김동찬 사장은 "구미는 기업을 위한 각종 인프라와 기업정책이 만족스러운 곳"이라고 지속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구미는 IT산업 본거지로 인프라와 마이스터고(금오공고·구미전자고) 소재 등으로 연구기술인력 확보가 용이한 점도 있지만 기업의 조그마한 애로도 흘려보내는 법이 없는 공무원들의 자세에 우선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는 삼성디지털이미징 창원사업장 생산라인을 구미로 이전키로 해 구미는 삼성 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공장을 갖게 됐다. 삼성이 구미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심원환 상무는 "구미는 휴대전화, 프린트 등 완제품 사업의 핵심 기지로, 이번 카메라 생산라인 이전으로 소형·초정밀 등 각종 완제품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구미는 대기업이 탐낼 만큼 각종 인프라를 잘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노력들을 하나

기업의 투자는 수요처·물류비용·인력확보 등 시장성과 지자체의 유치 노력 등으로 결정된다. 시장성이 풍부해도 지자체의 노력 없인 성사되지 않는다. 각종 여건이 좋은 수도권도 있는데 굳이 구미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셈. 이 때문에 지자체마다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쏟는다. 때론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정보전과, 간도 쓸개도 다 빼고 사정하는 저자세도 불가피하다. 학연·지연·혈연 동원은 필수적이다. 투자 지역을 물색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해도 회사의 책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이런 건 수십번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우 몇 배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3억2천500만달러를 투자한 EM TTK사 유치에는 3년 정도의 긴 노력이 들어갔다.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부터 공장 설립까지 미국·일본의 실무자들이 국제변호사를 대동, 자기 주장을 강하게 요구하는 탓에 진땀 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하며 12시간씩 마라톤 협상을 몇 차례 벌였다.

"일본 실사단 방문 때 KTX 표를 못 구해 제 차로 대구까지 일본인을 직접 태워 줬더니 조금 감동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구미시 투자유치 실무자인 김진호 담당은 고생한 사연을 털어놨다. 결국 EM TTK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엑손모빌은 2007년 한미 FTA 협상 이후 국내 처음으로 이끌어낸 미국 투자라는 점에서 정·재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엑손모빌 유치에 숨겨진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엑손모빌 짐 해리스 부회장의 딸이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는데, 남유진 시장이 이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짐 해리스 부회장이 자신의 딸과 대학 동문인 남 시장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진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타깃기업 책임자의 가족관계까지 꿰뚫는 지략이 돋보인 대목이다.

남 시장이 학연으로 덕을 본 건 엑손모빌뿐만이 아니다.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이희국 LG실트론 대표이사 등과는 서울대 동문으로 최근 LG계열사들의 구미 투자 때 적잖은 덕을 봤다. 지난해 11월 4단지에 입주한 STX솔라㈜ 유치 때엔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구미 출신인 점을 감안, 수차례 고향 투자를 부탁했고 귀찮을 정도로 찾았다.

LS전선 안양사업장의 구미 인동사업장 이전 유치도 3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수도권 규제완화 이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첫 사례인데다 800여명의 임직원 옮겨오는 큰 건이어서 한 치도 소홀할 수 없었다. 특히 LS전선은 구미에다 기숙사, 연수원 등 대규모 시설 신축을 원했다. 시청 직원들은 부지 마련에 동분서주했고 1년여에 걸쳐 지주를 설득한 끝에 산동면에 9만9천여㎡의 부지를 마련, 최근 행정절차 중이며 연말쯤 준공될 전망이다.

이홍희 구미시 경제통상국장은 "투자유치는 관청이 키를 쥔 게 아니라 기업이 전적으로 쥐고 있어 간, 쓸개를 떼놓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건다는 자세로 임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황종철 투자통상과장은 "기업체에 구미라는 도시상품을 팔기 위해선 세일즈맨 또는 머슴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며 "감동을 주기 위해 온갖 노력들을 쏟는다"고 했다. 류시건 투자유치 담당은 "투자와 관련한 기업동향을 물 샐 틈 없이 챙겨야 하고 기업 관계자 방문 때 숙식을 챙기고 택시까지 잡아주는 정성을 들인다"고 했다.

◆어떤 기업들이 왔나

지난 4년간 구미가 투자유치에 성공한 기업은 21개사, 투자액은 3조5천805억원이다. 쿠어스텍 아시아(1천만달러·미국), 아사히글라스(3억5천만달러·일본), 엑손모빌(3억2천500만달러), GS칼텍스·신일본석유(1억달러) 등 외국인투자기업 5개사(7억9천500만달러)와 지난달 24일 3천억원(고용창출 1천500여명)을 추가 투자한 LG전자㈜와 LG이노텍㈜ 등 국내 기업 16개사, 2조5천687억원이다. 또 최근 5개사가 1조5천억원을 추가 투자할 전망이어서 총 투자액은 5조원에 달한다. 신규투자 기업체는 솔라셀과 2차 전지, LED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업종이 주류를 이뤄 구미공단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꾸준한 투자유치 노력 등으로 구미국가공단은 휴대전화, 모니터, LCD 등 기술집약적 제품의 급성장으로 입주업체 수가 2000년 506개사에서 최근 1천284개로 두배 이상 늘었다. 가동률도 2월 기준 89%로 전국 산업단지 중 최고다.

구미·이창희기자 lch88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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