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에서 배우는 음식건강] 뜨겁고 매워야 속이 풀리는 해장국

"술 먹은 후 컨디션 회복에 발한과 이뇨가 필요" 매운 해장국 술독 푸는

술을 먹은 뒤 흐트러진 속을 달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먹는 국을 통칭해 해장국이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은 토마토 주스나 오렌지 주스를 차게 해서 마시거나 고기, 빵 등 마른 음식으로 해장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쓰린 속이 풀린다니 '식습관이 체질을 바꾼다'는 말이 그리 과장된 건 아닌 듯하다.

해장국은 이름 그대로 뜨거운 국을 기본으로 한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넘고 식도를 지나 장에 이를 때야 "시원하다"고 하면서 술독이 풀리는 기분을 느낀다. 조선시대 풍속도에 나오는 술집이나 주막을 보면 큰 솥이 등장하는데 십중팔구는 해장국이 끓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해장국을 끓이는 소재는 달라도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하는 뜨거운 국으로 내놓는다는 점에는 차이가 별로 없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의 명물로 꼽히는 효종국은 이름만 봐도 해장국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갈비와 해삼, 전복에 배추속대와 콩나물, 버섯 등을 넣고 된장을 풀어서 푹 고아 만드는데 국이 워낙 걸쭉해 잘 식지 않았다. 교통수단이라곤 말이 가장 빨랐던 조선시대에도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에 풀어도 따뜻해 그대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종을 치는 동틀 무렵을 가리키는 효종(曉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해장국의 재료는 소'돼지고기와 갈비 같은 육류에서부터 복어와 북어, 황태 같은 생선류, 굴이나 재첩 등 해산물, 콩나물과 시래기 등 채소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지역별로 보면 내륙지방에서는 고기와 뼈다귀, 선지 등 육류에 각종 채소와 양념을 한 해장국이 성행한다. 해안지방에서는 생선, 조개 등에 채소와 양념을 넣은 해장국을 즐겨 먹는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역의 특색에 맞게 발달해온 해장국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재료와 맛은 각기 다르다'고 할 만큼 풍성하다. 하지만 천차만별의 해장국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맛은 바로 매운 맛이다. 고추나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내야 속을 풀어주는 제맛을 인정받는 것이다.

고추는 남아메리카 아마존강 유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후 일본에서 들어왔다. 남방식품이라 해서 남번초(南蕃草)라 불렀고,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 왜겨자라 하기도 했다. 매운 맛 때문에 고초(苦草)라고도 불렀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1)에서 남만후추라고 쓰고 있다.

'남만후추는 큰 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왜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이를 왜개자라고 한다. 술집에서는 이것을 마당에 조금씩 심어 소주에 타 고추술을 만들어 팔았다.'

뜨겁고 매운 해장국을 먹다 못해 술에다 고추를 타서 마셨을 정도라면 매운 맛이 속을 풀어준다는 인식은 당시부터 깊었던 듯하다. 대구한의대 한방소화기내과 변준석 교수는 "술을 먹고 난 뒤 컨디션을 빨리 회복하려면 발한과 이뇨가 필요하다"며 "뜨겁고 매운 해장국은 그런 측면에서 술독을 푸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요즘의 술꾼들 역시 술 마신 이튿날 매운 해장국을 찾는 식습관은 다를 바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비운 뒤 주독이 빠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속에는 나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한다. 술로 상한 속에 뜨겁고 매운 음식이 들어가면 더 상할 것이란 염려다. 곽병원 곽동협 병원장은 "위장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는 꿀물이나 북어국 등이 좋지만 매운 해장국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며 "술 마신 다음날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해장술"이라고 당부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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