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무색한 세상이다. 돈에 사람 목숨까지 좌지우지되면서 점점 돈 나고 사람 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범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로 지역화폐운동이다. 특정 지역 또는 공동체 내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가 21세기 대안화폐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올 하반기 가칭 'S(Seoul)-머니'를 도입할 계획을 밝혀 그동안 시민단체, 공동체 등이 중심이 돼 추진해온 지역화폐운동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S-머니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서비스를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할 때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포인트 화폐다. 그 포인트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회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돈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교환질서를 회복하려는 지역화폐운동을 취재했다.
◆기원'현황'종류
공동체화폐, 대안화폐 등으로 불리는 지역화폐는 1983년 캐나다의 작은 마을 코목스밸리에서 처음 탄생했다. 당시 코목스밸리는 공군기지 이전과 목재산업 침체로 실업자가 넘쳐났다. 이를 지켜보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통화시스템인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를 만들어 주민들끼리 노동력과 물품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3천개 이상의 지역화폐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경우 500개, 프랑스는 250개, 미국과 일본은 각각 200개 이상의 지역화폐를 갖고 있으며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 회원 2천명으로 1990년대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화폐로 분류된 '블루마운틴 레츠'가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300개 이상의 지역화폐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남미와 아시아에서도 지역화폐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는 1996년 '녹색평론'을 통해 개념이 소개된 뒤 1998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미래화폐'라는 지역화폐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 경기 안양의 '고잔 품앗이', 경남 진주의 '상봉레츠', 서울 송파구의 '송파품앗이' 등 30여개의 지역화폐가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가 지역화폐운동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의 지역화폐운동은 품앗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자원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지역화폐를 받는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지역화폐운동이 현대적 의미의 '다자간 품앗이'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지구촌에서 유통되고 있는 지역화폐는 크게 실물화폐, 전표·수표, 가상화폐 등 세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실물화폐 형태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부터 미국 매사추세츠주 버크셔 카운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버크셰어'다. 5개 은행 13개 지점에서 95달러를 내면 100버크셰어를 환전 받을 수 있다. 버크셰어를 사용하면 5% 할인을 받는 셈이다. 버크셰어는 주유소, 식품점 등 400여개의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시중에 유통되는 규모는 23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전표'수표 형태는 영국, 헝가리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통장'적립카드 등을 통해 관리되는 가상화폐 형태에는 사회복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발돼 시카고를 비롯해 미국 몇몇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타임달러시스템 등이 있다.
◆국내 우수 사례
국내를 대표하는 지역화폐운동 단체는 대전의 '한밭레츠'(www.tjlets.or.kr)다. 1999년 회원 모집을 시작해 2000년 공식 출범한 한밭레츠는 국내 최대 규모인 620가구(2008년 기준)의 회원을 자랑하고 있다. 한밭레츠에서 사용되는 지역화폐는 '두루두루' 사용하라는 의미를 가진 '두루'로 1천두루는 1천원에 해당된다. 두루는 2002년 실물 형태의 화폐로 발행, 사용되다 이듬해 컴퓨터 계정으로 관리하는 가상화폐로 바뀌었다.
두루는 품앗이와 물물교환 등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읽지 않은 책이나 아이가 커서 입지 못하게 된 옷 등을 내놓거나 집수리'농사일'외국어교육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두루를 얻는다. 두루 사용 활성화를 위해 모든 가맹점에서의 거래는 30% 이상 두루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2008년 거래 건수는 1만569건, 거래금액은 1억8천100여만원이다. 이 중 현금 거래는 8천500여만원인 반면 두루 거래는 9천600여만원으로 두루 거래 비율이 53%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의 지역화폐운동
달서구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대구여성노동자회, 환경사랑연구소에서 지역화폐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대구YMCA는 지역화폐 제도 도입을 검토중이다. 가장 활발히 지역화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곳은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이다.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은 2005년 출범시킨 품앗이공동체 '늘품'을 통해 지역화폐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것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늘품에서는 회원들이 자신의 노동력이나 상품을 판매해 지역화폐인 '품'을 벌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는데 사용한다. 현재 늘품 공동체 회원은 1천200여명이다. 회원 자격에 제한이 없고 회비도 없다.
늘품에서는 회원 간 원활한 거래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놓았다. 본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홀몸노인 도시락 배달사업 등에 참여해 노동력을 제공하면 시간당 2천500품, 물품 판매를 할 경우 재킷은 2천~3천품, 티셔츠는 500품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 당사자 간 흥정을 통해 가격은 조정될 수 있다. 이렇게 획득된 품은 적립카드를 통해 관리된다.
늘품의 모든 거래는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본동주공아파트 내에서 열리는 나눔장터와 회원 간 직거래 등을 통해 이뤄진다. 지역화폐 유통 활성화를 위해 회원 간 거래에서는 50% 이상 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나눔장터에서는 매일 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거래를 한다. 이들이 거래하는 금액은 하루 평균 5만품. 나눔장터에 나오는 물건 가격이 평균 500~1천품인 점을 고려하면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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