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화폐운동] 왜 안되나? 불신·인식 부족 가장 큰 걸림돌

지역화폐운동이 가져올 수 있는 순기능은 여러 가지다. 제도권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출된 부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화합을 다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덕목으로 꼽힌다.

유혜종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늘품 담당자는 "지역화폐운동을 벌인 뒤 나타난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복지서비스 수혜자로 수동적 위치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됐다는 점이다. 더불어 유휴 노동력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회원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화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활성화되지 못하는 원인

가장 큰 걸림돌은 지역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참여 부족이다. 지역화폐운동 관계자들은 "우리끼리 쓰는 화폐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하냐?"라는 의문과 함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지역화폐에 대한 인식 부족은 지역화폐가 통용되기 위해 필요한 유통구조 확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지역화폐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통구조는 지역화폐의 환금성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맹점, 장터 등 지역화폐를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지역화폐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사장될 수밖에 없다.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으로 2003년 문을 연 경남 함안의 녹색대학은 개교 당시 녹색화폐를 발행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녹색대학은 교직원 급여의 일정 부분을 녹색화폐로 지급할 만큼 녹색화폐 유통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녹색화폐는 1년도 안돼 유통이 중단됐다. 대학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가맹점이 녹색화폐를 받아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경록 대구YMCA 시민사업팀장도 "지역화폐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역화폐의 환금성과 효율성 등을 담보하기 어려워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2000년 녹색화폐를 발행한 환경사랑연구소(소장 안경숙)도 얼마 가지 않아 난관에 부닥쳤다. 안경숙 소장은 "지역화폐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가맹점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가맹점 수가 적다 보니 거래가 뜸해지고 기존의 가맹점마저 지역화폐운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 경험을 거울 삼아 지난해 말 중구 방천시장에 사무실을 냈다. 방천시장에서 다시 지역화폐운동을 벌여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지역화폐운동을 벌이는 단체의 열악한 재정도 운동 추진력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현숙 한밭레츠 두루지기(담당자)는 "한밭레츠의 경우 초기 2년까지 운영비, 사업비 등을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독지가들의 굵직한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밭레츠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화폐운동이 정착되기까지 어떻게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 활성화 방안

지역화폐운동 담당자들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묘수가 없다고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늘품공동체는 탁구, 서예 등 소모임 활동을 통해 회원 단합을 도모하고 지역화폐운동도 알리고 있다. 한밭레츠도 소모임 활동을 장려하는 한편 소식지 발행, 이동영화관 등 지역화폐 홍보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가맹점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열심히 참여하는 가맹점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다. 한밭레츠는 초창기에 조급하게 가맹점 수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가입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기간에 가맹점 수를 늘리는 가시적인 성과보다 진성 가맹점 유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관심을 갖는 사람을 수소문한 뒤 찾아가 설득하는데 주력했다.

이 방식이 주효해 진성 가맹점이 진성 가맹점을 유치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현재 한밭레츠는 한의원, 의원, 치과, 동물병원, 약국, 채식식당, 카페, 목공예점, 컴퓨터수리점, 자전거포, 유아용품점, 학원, 인쇄소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가맹점을 확보하게 됐다. 가맹점 모집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본동종합사회복지관 사례처럼 장터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재정 문제는 한밭레츠처럼 많은 후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한시적으로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이 지역화폐운동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달서구청이 늘품 공동체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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