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에 걸쳐 펼쳐진 국내 최장 산성
금정산은 강원도 태백에서 뻗어 내려온 낙동정맥이 다대포 앞바다에 투신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켜 솟구친 산이다. 서쪽 평원을 흐르는 낙동강과 나란히 부산시내를 감돌아 남해까지 동행길을 이어간다.
금정산은 금정산성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평화시에는 도시의 주산(主山)으로, 전시에는 국방의 요새이자 주민들의 피란처로 기능했다. 이렇게 건축된 성곽은 50리길, 국내 최장(最長)의 산성이 됐다.
취재팀은 부산역에서 도시철도를 타고 온천장역에서 내려 금강식물원-남문으로 향하는 코스를 올랐다.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호흡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산비탈을 화려하게 수놓은 진달래가 있어 등산화의 중력을 줄여 준다.
50분쯤 걸어 휴정암 약수터에 이른다. '부득고성체타'(不得高聲涕唾, 큰소리로 코풀지 말고 침 뱉지 말라). 약수터에 걸려 있는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남에게 허물될 일을 하면 뒷날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르리라'는 경구다.
암자를 끼고 10분쯤 걷는다. 옅은 신록 사이로 소박한 모습의 남문이 일행을 맞는다. 남문은 동제봉과 상계봉을 잇는 능선에 설치된 성곽으로 4대문 중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산이다. 기단석의 반원형 층단은 신라 축성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근거다. 주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40분쯤 오른다. 확 트인 경사면을 배경으로 아치형의 제법 웅장한 성채의 동문이 마중을 나온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자연부락 산성마을
금정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산성 내에 대규모 마을을 끼고 있다는 점. 임란 때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산성 안에 이주해 살다가 전란이 끝난 후에도 눌러 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일종의 자치구인 셈이다. 숙종이 산성 축성 후 유지'보수를 위해 정책적으로 이주를 장려했을 정도로 산성마을은 전략적 근거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주와 농노가 봉토(封土)를 근거로 자치를 이루었던 유럽의 봉건체제와 형태가 유사하다.
동문에서 다시 3망루를 향해 오른다. 능선 위에서 힘있게 뻗어나간 성곽을 보노라니 옛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번을 섰던 군사들의 구호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4대문과 망루들은 이제 요새의 역할을 포기하고 산꾼들의 전망대로 용도를 바꾸었다.
산성고개를 넘어 북문 쪽으로 곧장 나간다. 나비바위 근처에서 암벽등반 동호인들이 자일을 감고 클라이밍 채비를 꾸리느라 분주하다. 고개를 살짝 드니 송림 사이로 누각이 보인다. 3망루다. 한눈에 보아도 최고의 망루 자리다. 이렇게 평화로운 누각에 전쟁의 상흔이 서려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시 북진. 실선 같은 성곽을 따라 북문이 멀리 보이고 그 끝엔 오늘 산행의 정점인 고당봉이 성채처럼 둘러처져 있다. 북문은 광장 복판에 있다. 4대문 가운데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는 북문. 직사각형의 석문에 누각과 성벽을 억지로 잇대놓은 느낌마저 준다. 그래도 혹자는 미관이 배제된 투박한 질감에서 성벽의 전형을 찾기도 한다. 북문엔 산장과 샘터가 있어 산꾼들의 휴식공간으로 유용하다. 이 문을 통해 산성 마을과 범어사가 연결된다.
금정산장 주변에서 홍매(紅梅)를 찾았다. 매화, 목련들이 순백의 세를 이룬 꽃밭에서 홍일점으로 존재를 뽐내는 홍매의 매력에 모두들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다.
#고당봉 너머로 펼쳐진 낙동강 일몰
샘터에서 목을 축인 후 일행은 다시 고당봉으로 오른다. 여전히 급경사길은 이어지고 계속되는 계단은 호흡을 불편하게 만든다. 고모당(故母堂)을 끼고 곧장 올라선다. 고당봉(高堂峰'801.5m) 정상석이 연무 속에서 일행을 맞는다. 암봉에 올라선다. 상계봉, 남문부터 원효봉 산성마을까지 오늘 취재팀의 궤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낙동강의 은빛 물결이 옅은 황혼 속에서 아름답게 출렁인다. 7백리길을 달려온 강은 이제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이다.
산정엔 '금정' 신화의 기원인 금샘이 투명하게 빛난다. 한 대롱 물도 받을 수 없는 산꼭대기에서 어떻게 수량을 유지하는지 정말로 미스터리할 뿐이다.
일행은 다시 범어사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고은 시인이 말했던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등로에서 헐떡이느라 지나쳤던 물상들이 하산길에서 하나둘씩 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계곡을 적시는 시냇물, 길섶엔 막 물감을 펼친 산수유, 생강나무들의 노란 울림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온갖 봄꽃들의 군무 속에서 범어사가 웅자(雄姿)를 드러낸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배열한 가람 배치가 인상적이다.
10여 그루 장송(長松)의 사열을 받으며 서있는 일주문이 시선을 잡아끈다. 일주문은 세속과 부처 세계를 구분하는 일종의 문지방. 일주문은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과 연계된다고 한다. 보통의 일주문은 2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친다. 그러나 범어사 일주문은 기둥이 4개다. 굳이 일주삼간(一柱三間)으로 지은 뜻은 무엇일까. 단순한 조형적 공간 배치인가, 승속(僧俗)을 뚜렷이 구분지으려는 겹겹의 안전장치인가. 알듯말듯한 일주문의 화두를 한켠에 담고 귀가길을 재촉한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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