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속담에 '가면이 천리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탈을 쓰고 얼굴을 가리면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사이가 천리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뜻으로, 직접 얼굴을 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면 낯간지러운 일도 서슴없이 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가면의 사전적 의미는 '얼굴을 가려 변장을 하거나 얼굴을 방호하기 위하여 쓰는 조형물'을 말한다. 통상 '가면을 쓰다'라고 하면 '본심을 감추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민다'는 의미이고, '가면을 벗다'라는 뜻은 '거짓으로 꾸민 모습을 버리고 정체를 드러낸다'로 쉽게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크다. 미궁에 빠져 있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문득 생각나는 북한의 속담이다. 아직 정확한 물적 증거는 없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은 해군 전사자들에게 지면을 빌려 깊은 애도를 드린다.
20세기 서양미술사에 있어 가면과 깊은 인연을 가진 제임스 앙소르는 표현주의의 고독한 선구자로 특유의 어두운 도상과 가면 쓴 사람들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그들의 삶에 대한 공포를 철학적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했던 가면가게의 추억은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익명성에 기대어 온갖 추악한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는 도구로만 느껴지는 편협된 인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들은 그의 작품에 중요한 주제로, 자신을 비롯한 사람의 본성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그는 벨기에의 화폐에도 등장할 만큼 널리 사랑받는 국민화가이지만 생전에는 대중들은 물론 비평가들에게조차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비운의 화가였다.
작품 〈음모〉는 앙소르 자신과 주변의 인물들이 가면 속에 가려진 실체의 모습들을 드러내지 않고 위선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풍자하듯 묘사해내고 있다. 그들 마음속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서로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으며, 이러한 모습들은 자기 주변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기괴하고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가면 모습은 또 다른 자신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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