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산사순례 회원들과 함께 경주 기림사로 가는 길이었다. 남도의 길목에는 하얀 벚꽃이 봄바람에 휘날리고 회원들은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한 달에 한 번 순례를 나서 기도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림사는 한국 불교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372년) 때라고 알고 있지만,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는 인도의 승려인 광유성인에 의해 해동 기림사에 먼저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때만 하더라도 불국사보다 더 웅장한 10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때 전쟁과 풍파(風波)로 인해 소실된 천년 고찰이다. 그 이름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인 기원정사에서 기인한다. 그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여 그런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의 힘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라는 연기법(緣起法)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연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도의 최상층 계급인 브라만의 자녀였던 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연기에 의해서였다. 어느 날 마하가섭은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갔다. 그때 부처님은 마하가섭을 보고 "이제야 왔습니까?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참으로 오래되었소" 하고 첫마디를 꺼내셨다.
마하가섭은 이 말을 듣자, 전생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있음을 알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행제일의 제자가 되었다. 40여년 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난 뒤, 다비를 하였는데 장작에 아무리 불을 지피려 해도 붙지 않았다. 당시 마하가섭은 열반 소식을 몰랐다가 일주일 후 오백 비구들을 거느리고 돌아와서 관에 불을 지폈는데 그때야 불이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불교 조계종의 종지인 선종(禪宗)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초대조(初代祖) 달마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져 혜가·승찬·도신·홍인으로 의발(衣鉢)이 전수되다가 육조 혜능에 이르러 선종은 크게 중흥되었다. 이후 태고보우와 보조국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선종이 전파되고 일본에도 불교가 흥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가섭이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출가를 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선종이 전파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사람도 선악의 연기법에 의해 모든 삶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 항상 남을 도와 복을 지어야만 한다.
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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