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직원 이모(32)씨.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껌이 생활 필수품이 됐다. 조금이라도 입 안이 개운치 않을 때는 껌을 씹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그러다보니 차 안에도, 회사 책상에도, 집의 식탁에도 껌이 놓여있다. 집에서 양치질을 하고 난 뒤에도 껌을 씹어야 편안한 기분이다.
한 달에 드는 껌값만 3만원에 달한다는 이씨. 그는 "흔히 값이 너무 쌀 때 '껌값'이라고 하지만 요즘 껌값은 '껌값'(싼 것의 대명사)이 아니다"고 투덜거렸다.
◆껌값은 '껌값'이 아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일리톨 껌 한 통은 500원이다. 작은 곽 하나에 6알의 껌이 들어있다. 가로·세로 1.5㎝, 높이 0.7㎝의 작은 껌 한 알당 가격은 83.3원. 크기에 비하면 꽤 비싼 금액이다. 껌을 두 줄 높이로 쌓아 책 사이즈(4*6형)를 만들려면 2만9천600원이 든다. 평균 1만~1만5천원 선인 소설책 한 권보다 껌값이 훨씬 비싼 것이다.
현재 백화점에서 팔리는 가장 비싼 껌은 수입품으로 일본제 '헬로키티껌'이 차지했다. 5알이 든 한 통에 1천원(27.5g)이다. 국내 제품으로는 최근 선보인 '천연치클껌'이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17개가 든 한 통 가격이 2천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택시 기본료(2천200원)보다 껌값이 더 비싸다.
우습게 보이는 '껌값'이지만 모아보면 엄청난 금액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만다. 홈플러스 대구점 한 곳에서 한 달 동안 팔려나가는 껌 가격의 합계는 1천만원 정도이다. 매장 관계자는 "껌은 단품으로 놓고 보면 보잘것없지만 모으면 작은 부피에도 불구하고 금액이 크다"며 "부피가 큰 스낵류 등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껌값이 더욱 비싸질 전망이다. 껌 한 통을 구입할 때 소비자가 내야하는 폐기물 부담금이 오르면서 껌값 역시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현재는 500원짜리 껌 한 통에 판매가의 0.27%인 1.35원을 폐기물 부담금으로 내야 하지만 2012년에는 이 부담금이 9원으로 무려 7배나 인상될 전망이다.
그러면 과연 껌값보다 싼 것은 뭐가 있을까? 당황스럽게도 '쌀값'이 껌값에 비견될 만한 싼 것의 대명사로 꼽힌다. 한끼 쌀값 200원. 벌써 5년 전부터 한끼에 200원 수준이었던 쌀값이 껌값보다 하락한 지 오래다.
◆껌값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처음 국산 껌을 생산한 곳은 해태제과였다. 해태 풍선껌과 설탕껌, 뽑기껌이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껌값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0원에 불과했다. '껌값'일까? 1972년 자장면 한 그릇 값이 3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껌값'이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금액이었다. 1973년 처음 출시된 롯데의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는 껌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제품. 기존 제품들보다 크기와 부피를 늘리고 향을 첨가해 국내 껌 문화의 초석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1978년 껌값은 30원으로 인상됐다. 당시 촬영된 해태 쥬스껌 광고에는 배우 정윤희와 가수 김세환이 청재킷에 청바지를 차려입고 등장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자장면값이 100원으로 급격히 뛰어오르며 다른 어떤 제품에 비해 껌값이 싼 제품으로 인식되게 됐다. 이후 자장면값은 1천원, 2천원, 3천원 등 계속 뛰어오른 반면 껌값은 30원에서 100원, 300원, 500원 선으로 인상됐다.
1990대 껌 성분으로 각광을 받았던 것은 '후라보노'. 오리온과 롯데, 해태는 후라보노이드 성분을 함유한 껌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놨다. 그리고 2000년 들어 껌 업계를 평정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자일리톨 성분이다. 2000년 롯데제과가 다시 내놓은 자일리톨이 인기를 끌면서부터 해태제과, 오리온이 앞다퉈 치아재생 기능을 갖춘 자일리톨 신제품(62개짜리 대형포장)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한 봉지 3천원대이던 껌값이 드디어 5천원을 넘어서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다시 인하돼 3천~4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지금은 자취를 감춘 '추억의 껌'들은 중동에서 맹활약 중이다. 오리온 제과는 20년 전부터 '바나나껌'을 중동에 수출해 연간 2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해태제과도 딸기맛·바나나맛·멜론맛 등 5가지 과일 맛이 나는 껌을 '해태껌'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지역에 수출해 지난해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천연 치클
껌은 천연수지나 합성수지에 감미료와 향료 등을 혼합하여 구강 내의 체온과 타액으로 적절한 도수로 연화시켜 감미료와 향료 등이 녹아서 나오게 배합한 것이다. 껌의 원료는 크게 기초제, 당류, 향료, 기타 재료인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제. 원래는 사포딜라(sapodilla)의 수액에서 채취한 치클(chicle)이 껌의 기초제로 쓰이지만 원료가 워낙 고가이다보니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껌은 합성고무로 만들어진다. 열대고무추출액에 '초산비닐수지'라는 화학성분을 첨가해 만든 것이다. 초산비닐수지는 석유에서 추출한 물질로 접착제나 페인트에 쓰이기도 한다.
최근 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그동안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자일리톨 껌은 자연성분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면서 '건강에 좋은 껌'이라는 허상을 갖게 된 것.
이런 가운데 오리온에서는 최근 100% 천연치클로 만든 껌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천연 치클을 사용하다보니 1통 가격이 2천500원(17개)으로 비싼 편이지만 기존 껌에 첨가돼 있는 합성착색료, 합성착향료, 합성산화방지제 등을 모두 제외하고 천연향료와 천연색소를 사용해 안심하고 씹을 수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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