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얼음같거나 능글맞거나…실감나게 담은 비장감의 미학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황산벌'(2003년)과 '왕의 남자'(2005년)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세 번째 사극이다.

왜군의 침공을 앞두고 어수선한 조선 선조 시대. 조정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직된 대동계를 이끌던 정여립을 역모로 처단한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차승원)과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은 이후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간다.

이몽학은 대동계를 모함한 세도가 한신균(송영창) 일가를 몰살시키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맹인 검객 황정학은 정여립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면서 그와 맞선다. 아버지를 잃은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는 복수를 위해 황정학의 제자가 되어 함께 이몽학을 쫓고 이몽학을 사랑하는 기생 백지(한지혜)도 떠나버린 정인을 만나려고 이들을 따라 나선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의 암운 속에서 빚어지는 4인의 서로 엇갈린 운명을 그린 영화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영화로 옮겼다.

원작은 양반과 기생 사이에 태어난 견자가 황정학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네 모습은 몇 가지냐? 모두 네 칼로 죽여야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의 한과 설움을 뛰어넘어 스스로 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라는 것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은 진정한 자아를 찾게 하는 메타포이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에서 비중이 낮았던 이몽학을 대결 구도의 대척점으로 키워 황정학과 맞서게 한다. 그는 체제라는 구름을 벗어나 한양을 도모하는 반역의 달로 그려진다.

영화의 초반은 긴장감이 넘친다. 이몽학의 얼음처럼 차가운 이미지와 황정학의 해학적이면서 초인적인 이미지가 맞붙고 여기에 견자가 가세하면서 사뭇 비장미 넘치는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황정학과 견자가 함께 길을 가면서 다투는 장면은 '왕의 남자'에서 보았던 이준익 감독의 재치가 빛을 발한다. "야, 이눔아 눈이 있어도 못봐!""아니, 이 봉사(맹인)가!"라며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무술을 익히고 자신도 찾아간다.

특히 황정민의 능글맞은 연기는 '자토이치'의 맹인 검객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실감난다. 눈을 찡그리고, 입으로 똑똑 소리를 내면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휘파람 소리처럼 날카롭고 실감난다.

영화는 조선조 동인과 서인의 갈등과 선조 임금의 무능 등을 통해 권력층을 조롱하고 민초들의 저항과 왜군에 맞서는 충심 등을 멍석으로 깔고 그 위에서 주인공들의 증오와 갈등이 칼춤을 춘다.

선조 역의 김창완은 우유부단한 선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조정의 모습이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쉽다. 양 편에 선 신하들이 으르렁대고 임금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80년대 개그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레퍼토리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동인과 서인이 각각 자신들 당파의 인물을 천거하고 양쪽에서 한 명씩 뽑아 "육지는 신립이, 바다는 이순신이 지키게 하라"라고 명하는 대목에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 등 자그마한 에피소드에 대한 애정을 소담스럽게 그려내는 감독이다. 사극의 경우 블랙 코미디 성격으로 왁자지껄하게 풀어낸 '황산벌'이 있고 진지하면서도 민초들의 애환을 잘 그려낸 '왕의 남자'가 있다. 사극으로 놓고 본다면, 연출의 깊이가 '황산벌'에 더 가깝다. 작위적인 화면에 얕은 시선, 진정성보다는 스토리에 영합하려는 의도가 여실하다.

백지(한지혜)의 경우 원작에는 견주의 매력에 이끌려 그를 따라 나서지만 영화에서는 이몽학을 잊지 못해 그를 만나기 위해 따라 나선다. 4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 바람에 성격이 모호해지면서 극의 후반까지 판에 박은 듯한 모습만 보여준다.

"세상이 그런다고 다 알아줄 것 같아" "달이 떴다고!" 등 은유적인 대사들이 나오지만 스토리에 엮이지 않고 따라서 깊이 있게 전달되지 않는다. 대규모 전투 장면은 TV 사극 이상의 맛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사각 관계의 각은 어긋버긋하고 이음새 또한 버성기다. 4인의 백일몽은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한 없이 덧없어 보인다. 영화 또한 덧없고… . 러닝타임 116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15세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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