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소통의 리더십을 기다리며

지난달 아는 사람의 차를 타고 다른 지역을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과 실제 도로 상황이 많이 달라 같이 간 사람이 당황했다. 내비게이션의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본인이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건 지인의 잘못이기 보다는 너무 빨리 변화하는 세상 때문이 아닌가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몰라보게 길이 변한 것을 어찌할 것인가.

예전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엔 3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체감하는 변화는 3년이 아니라 1년만 해도 몰라보게 변화하는 게 요즘 세상인 것 같다.

이렇게 도로 하나가 만들어지는 변화가 지도상에는 불과 단순한 선 하나가 더 그어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지도의 단순한 선 밑에는 집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갑작스런 단절로 도로 위에서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사연과 이름 없는 들풀의 생명살이가 감추어져 있다.

단순히 그어지는 선 하나에도 이런 많은 외침이 감추어져 있으니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죽임과 외침이 감추어져 있을까? 이미 농민들이 생활의 터전을 빼앗겨 울부짖고 직장에서 쫓겨난 골재 노조원들이 삼보일배로 세상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물고기와 새들이 집을 빼앗겨 죽임을 당하고 멸종 위기종이라는 풀들이 고사 위기에 놓이고 모래와 강물이 울부짖으며 흐르고 있다. 오르는 채소 가격과 수돗물에 대한 불안으로 도시민들의 삶도 갈수록 고달파진다.

홍수 조절과 수질 개선 등의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한번이라도 강가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공사인지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맑아지고 있던 낙동강에 연일 큰 비가 온 뒤처럼 흙탕물이 흐르고 농경지가 준설토의 야적장으로 변하고 있으며 본류를 가로막는 거대한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지어지고 있다. 머리로 대답하지 않더라도 이미 가슴이 울리는 상황이고 납득하기 힘든 현장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종교계가 침묵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난 토요일에는 대구지역의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가 함께하는 4대 종단의 공동기도회가 있었다. 기도회의 목적은 생명질서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제발 멈추라는 것이었다. 이미 천주교 주교회의를 비롯해 조계종 종무회의 등 4대 종단의 대표기구에서 공식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종교인들의 기도에는 하늘의 뜻이 함께하거늘 이 정부는 왜 하늘의 뜻도 외면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면 민주주의가 기형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큰 두 축은 다수결 원리와 다양성 원리다. 다수결 원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투표 행위인데 투표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반대 의견을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다수결의 원리만 놓고 본다면 반대 의견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숫자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까. 4대강 사업은 다수결이 가져온 비극적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4대강 사업을 통해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나의 주장을 내세운 뒤에는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통해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기득권을 가진 사회적 강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주장을 펼 창구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정책을 집행하는 이는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입지는 않는지,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보고 의견을 구해야 마땅하다. 특히 지방 정부의 정책들은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지역 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소통의 리더십이라야 지역민이 골고루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다.

내일이면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따뜻한 마음의 지역 일꾼을 찾아서 투표하는 일과 더불어 한 가지 색깔의 지역에 다양성이 존재하도록 투표하는 일일 것이다. 나도 내일 투표하러 갈 것이다. 왠지 이번 선거 이후에 지역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렇게 서서히 이 지역도 진화해 가겠지.

안재홍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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