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책 읽기] 중국의 직접 민주주의와 선거

▨ 장타오(張濤), 『중국도시기층 직접선거연구 中國城市基層直接選擧硏究』(重慶出版社, 2008)

선거벽보와 플래카드가 전국 방방곡곡 거리거리를 뒤덮었습니다. 질펀하게 벌어진 민주주의 잔치 덕분에 산천도 도시도 모처럼만에 새 단장을 하였습니다. 확성기의 노래가락도 흥겹고, 후보자의 열띤 호소도 정답습니다. 어깨띠를 두른 아줌마 부대의 씩씩한 행진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개차의 행렬도 재미있습니다. 선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들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런 한국 선거가 무질서하고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총 8건의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수가 수십명이 넘는데도 집집마다 빠짐없이 공보물이 배달되고 게시물이 가지런히 부착되었습니다. 내걸린 현수막도 선거법이 정한 규격에 맞추어 제작되었고 활동도 규정된 시간대로 움직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선거 잔치입니다.

이 정도로 '즐기는 수준'의 한국 선거가 되기까지는 어려운 학습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민주주의 학습기간 동안 우리의 선거도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고무신과 쌀가마니로 얼룩지기도 했고 비방과 흑색선전만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한국 선거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제도와 철저한 관리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 선거를 보면 우리의 선거 수준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장타오(張濤) 교수가 쓴『중국도시기층 직접선거연구』(重慶出版社, 2008)를 보면 중국은 민주주의 학습 기간이 매우 일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제도를 실행한 것은 1979년 제2차 선거법 개정 때부터라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투표율 제고를 위한 형식적 투표인 계급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1979년 미국과 수교를 하는 시점에서 '민주가 없으면 사회주의도 있을 수 없고 사회주의가 없으면 사회주의 현대화도 없다'는 덩샤오핑의 말에 따라 선거제도를 전폭적으로 개정했다고 합니다.

여러 차례 개정 과정(1979년, 1982년, 1986년)을 거쳐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대한 규정, 제한적 경쟁선거(差額選擧), 선거구획분, 계표방식, 대표자 신분 등에 관한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1979년 개정에서 처음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던 미전향 성분의 지주,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반혁명분자와 형사범죄자가 '법에 의해 정치권리가 박탈된 자'로 개념 규정되었습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정신병자를 선거인명부에서 제외하는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1986년 개정에는 해외거주 중국 국민에 관한 조항도 추가했습니다. 재외 국민도 원적이나 출국 전 국내 거주지에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한적 경쟁선거를 제도화하였습니다. 선출할 대표의 수와 후보자의 수가 같았던 기존 제도를 경쟁이 가능한 선거로 바꾼 것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인민대표 선거에서 대표 정원이 100명이라면 후보는 130명에서 200명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는 무효가 됩니다. 선거구도 원래 생산단위, 사업단위, 업무단위와 거주 상황에 따라 획일적으로 구획하던 것을 주민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여 구획하도록 했습니다. 현재 중국은 의회대표 중에서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일정 비율을 차지하도록 하는 대표할당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국인대와 지방인대가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국가권력기관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공산당 스스로 민주적 선거를 지향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반 선거에서 공산당원과 간부의 대표 비율을 일정선 이하로 유지하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산당원 대표는 65% 이하, 간부 대표는 20% 이하가 되도록 조정합니다. 대표비율을 통제하는 이유는 약 40만명이 참여하고 있는 8개 민주당파의 지식인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 대표와 소수민족 대표의 비율도 일정선이 유지되도록 관리합니다. 여성 대표는 전체 대표 가운데 20% 이상, 소수민족 대표는 소수민족 인구 비율인 8% 이상 선출되도록 합니다. 이는 중국이 선거 후진국이라는 사실 여부를 떠나 승자독식을 지향하는 한국 선거에서 참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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