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대학의 세계화와 과학기술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이 있던 날 나는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 유스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날 호텔 접수부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덴마크의 주력 산업이 무엇이냐?" 그는 즉각, "과학 기술(science & technology)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는 주력 산업을 물었는데, 그 젊은이는 '낙농업'이다, 또는 'IT산업'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과학 기술'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그 나라 대학들이 굳건한 기초과학의 토양을 형성하고, 또 각 대학의 특성에 맞는 과학 기술을 꾸준히 개발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니까 모든 대학들은 각기 특정의 과학 브랜드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런 덴마크가 이른바 '강소국'(强小國)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의 필수요소로서 그 나라의 과학 기술 경쟁력을 우선적으로 들지 않을 수 없다. G7 선진국 가운데 과학기술의 발전 로드맵을 다양하게 구축하고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과학기술에서 찾는 노력을 하지 않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이들은 과학 기술과 인문 사회 영역의 지식들을 다양하게 융합하고 통섭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식 가치를 창출하려 한다.

사실 과학은 언제나 인간의 사상과 행위에 대한 세계관의 문제에 닿아 있다. 과학은 세상의 신비에 대한 새로운 대답과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그 질문은 과학 바깥의 영역으로 확산된다. 컴퓨터 과학의 발달로 의사소통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가히 인류의 문화사적 대사변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과 의식의 양태가 변화되고 그것이 철학, 예술, 법률, 경제 등의 영역에서 부단히 변화의 물결을 불러오게 한다.

과학 기술은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태적 환경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는 기본 조건은 향후 대한민국의 발전을 추동하는 데에 필수불가결이며 세계가 21세기 인류 문명의 미래를 이상적으로 건설해 나가는 데도 필수적이다. 더러는 과학 기술 문명의 어두운 그늘을 비판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런 문제들조차도 궁극적으로는 과학에 의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의 세계화'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저 선언적 수사로 쓰이기도 하고 막연한 희망의 표명으로도 쓰인다. 어쨌든 이제는 이 말에 대한 대학인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학의 세계화에 다가갈 것인가. 나는 과학 기술이 세계적으로 발전해 가는 구체적인 과정과 목표와 전략 등을 대학이 통찰력 있게 포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연후에 그것을 대학 발전의 과업과 연계하는 데서 '대학의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예컨대 기초과학에 대한 대학의 소명을 확실히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국가 사회 전체가 기초과학에 대한 대학의 역할을 인식하고 지원하는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 러시아가 경제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국으로서의 잠재력을 유지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초과학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 기능들을 활성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의 세계화는 어렵다.

요컨대 과학 기술 발전 모델을 참조함으로써 대학은 세계적 수준을 지향하는 교육 지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을 통섭하고 융합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마인드를 대학 내외의 여러 분야로 학문적으로 또 정책적으로 소통하고, 그 소통의 힘으로써 다시 대학 발전의 동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는 대학의 커리큘럼을 혁신하고 연구 기능을 더욱 전문화하는 데서 실제적인 효과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대학의 세계화는 추상적 명제로 수사적 표현으로 거론할 일이 아니다. 과학 기술의 세계적 지표들을 대학의 발전 지표로 치환하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산학협력의 모델도 이런 차원에서 혁신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김석삼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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