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은 묶고 입과 발은 풀고…찾아가는 유세 정착

'열전 13일' 6·2 지방선거운동 결산

29일 오후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서 달성군수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지원유세에 많은 유권자들이 몰렸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9일 오후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서 달성군수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지원유세에 많은 유권자들이 몰렸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 표를 호소하는 지방선거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1일 자정을 기해 막을 내렸다. 선거운동 방식은 날로 진화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분야에서 과거와 달랐다.

○…1인8표제가 가장 큰 특징이다. 1995년 1회 지방선거에서 1인4표제가 도입된 이래 2002년 광역의원 비례대표가 추가돼 1인5표제가 됐고, 2006년에는 기초의원 비례대표가 추가돼 1인6표제가 실시됐다. 여기에다 이번에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추가됐다. 지방의 행정과 행정감시, 교육과 교육감시 선량(選良)을 뽑아 4년을 맡기는 어느 지방선거보다 중요한 선거임 셈이다.

○…법정선거운동 기간은 13일이었지만 광역단체장이나 교육감 등은 2월 2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예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길게는 120일간 레이스를 펼친 후보도 적지 않다. 정치 신인이 얼굴을 알릴 기회를 충분히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피를 말리는 레이스가 너무 길어 후보들이 지치고 온갖 불탈법으로 얼룩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선관위는 예비후보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후보자 기탁금의 20%를 먼저 선관위에 납부하도록 했다. 예비후보 등록 관련 서류도 제출해 정보를 공개, 유권자들의 판단을 돕도록 했다.

○…선거 종류에 따라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이 다르게 적용된 것도 이채로웠다. 광역의원과 시 지역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2월 19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가능했고, 군 지역 단체장과 기초의원은 가장 늦은 3월 21일부터 예비후보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유권자 수에 따른 차별화였다.

○…예비후보 선거운동까지 합치면 후보자들에게 선거운동 기간은 짧지 않았지만 선관위의 기본 방침이 '돈줄은 묶고 입과 발은 푼다'는 것이어서 과거와 같은 떠들썩하고 화려한 선거운동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보산업의 발전상을 반영, 컴퓨터를 이용한 홍보 문자 발송이 횟수 제한은 있었지만 가능했고 선거운동정보라는 표시만 하면 유권자 누구든지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비방은 여전히 금지됐다.

어깨띠와 변형된 조끼 그리고 깃발 등도 허용, 선거운동 방식을 다양화하는 등 진전도 있었다. 또한 소규모 게릴라성 골목 유세의 활성화는 유권자를 부르는 선거운동이 아니라 유권자를 찾아가는 선거운동으로 바꿔놓았다.

○…전반적으로는 무미건조한 선거였다는 것이 선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건은 과거의 북풍보다 더 거세 선거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천안함 선거'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특히 서울 수도권과 달리 대구경북은 일찌감치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선거의 맥이 풀리는 바람에 선거 열기는 더욱 냉랭했다. 한나라당 김범일 대구시장 후보와 김관용 경북지사 후보는 자신의 선거전에 몰두하기보다는 일부 취약 지역 지원 연사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슈도 없고 현안도 없는 '사상 가장 열기 없는 선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 선거와 일부 기초단체장 선거가 평균 이상으로 과열되는 현상을 빚기도 했으나 전체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은 유권자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묘수 찾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선거사무소의 현수막과 거리를 장식한 플래카드에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문자메시지의 범람은 예상되긴 했지만 더욱더 기승을 부렸다. 일부 후보들은 주차된 차량에 적힌 전화번호를 미리 수집해 홍보에 활용하는 발빠른 모습도 보였다.

미디어 선거의 장점이 부각됨에 따라 달리 홍보에 유력한 수단이 없었던 후보들은 신문과 방송 광고에 많은 자금을 투여했다. 반면 방송토론회는 이번 선거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선거 열기가 낮았고 후보간 우열이 너무 뚜렷한 곳이 많아 TV토론이 성사되지 못한 곳이 많았고 성사되더라도 방송 시간대가 나빠 열기는 낮았다.

○…금품살포와 관권선거 그리고 군중 동원 등의 구태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선거운동 문화의 변화로 평가할 만하다. 선거판에 풍기던 돈냄새는 훨씬 덜했다는 것이 선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군수 선거 예비후보 한 사람이 구속되고 후보 부인이 검찰에 고발당하는 사건이 터진 성주나 금품살포 의혹을 받은 후보의 친척집이 압수 수색을 받은 예천은 물론, 크고 작은 금품 관련 사고가 연이어 터진 영천과 영덕, 경주와 봉화, 구미, 청도 등 경북의 일부 지역은 구태를 재연해 뜻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폭로전과 고소·고발전은 기초단체장 선거가 치열하게 전개된 접전지라면 예외가 없었다. 성명전으로 시작한 공방이 폭로로 이어지고 고소와 고발로 발전하는 형태는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싸움에는 후보들만 개입된 것이 아니었다. 배후 인물로 지목된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까지 모두 진흙탕 속으로 빠져든 경우도 몇 군데 있었다.

○…이번 선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여야 각 정당들이 후보자 공천 수단으로 여론조사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당원 투표도 없이 단순 여론조사를 경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는 바람에 여론조사의 힘은 더욱 셌다. 특히 한나라당 공천 이전 공천 신청자 진영에 의한 인지도와 지지도 제고를 위한 여론조사 남발로 '여론조사 공해'라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그 때문에 ARS 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평소 5~10% 정도였던 것이 3% 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대구경북의 경우 한나라당 공천이라는 예선이 본선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한나라당 공천이 막을 내리자 가뜩이나 없던 선거 열기가 더 식어버리는 현상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나 친박을 표방한 유사 한나라당 후보를 제외하고는 대구경북 전 선거구에서 야당이 당선자를 내기 힘든 일당 독주 정치 현실은 그대로였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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