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령지사

풀뿌리 민주주의를 짊어지고 갈 3천991명의 일꾼이 결정됐다. 지방자치시대에는 지방관 선출과 심판이 유권자의 직접적 선택인 선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선거가 5회에 이르도록 최선의 선택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소속 정당이나 바람 같은 간접적 요인에 선거가 좌우된다는 사실은 우리 지방자치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지방관들의 임무와 평가 방식은 고려 우왕 때 정한 수령오사(五事)에서 명문화됐다. 논밭을 개간하고, 부역을 균등하게 하며, 인구를 늘리고, 도적을 없애며, 송사를 간편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가 수령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과제였다. 조선에 들어 수령칠사로 늘었고, 경국대전에 규정됐다. 농사와 뽕나무를 성하게 하였는가, 인구는 늘렸는가, 학교를 일으켰는가, 군정을 정돈했는가, 부역을 고르게 했는가, 송사를 간편하게 했는가, 간활(奸猾)한 일을 중지시켰는가 등 일곱 가지였다.

수령에 임명된 자는 부임 전에 임금을 뵙고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렸는데 이 자리에서 임금이 "수령칠사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때 당황해 제대로 답을 못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몇몇은 임금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파직되기도 했다. 수령의 칠사에 대해서는 평가보고서가 꼼꼼하게 만들어졌으니 바로 '칠사계본'(七事啓本)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은 스스로 선정한 수령지사라 할 수 있다. 지역의 특성과 여건, 유권자들의 희망사항을 감안해 할 일을 정한 것이니 임기 내내 잊지 않고 지켜야 할 도리임에 틀림없다. 유권자의 의무는 당연히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당선자가 자신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는지 주목하는 일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관의 성적은 일 년에 두 번씩 매겨져 중앙에 보고됐는데 이를 '전최'(殿最)라고 했다. 근무 성적이 최하 등급이면 전, 최고 등급이면 최로 구분했는데 지방관의 인사자료에 붙여 다음 인사에 반영했다. 다가올 여섯 번째 지방선거에서는 지방 일꾼들 스스로 약속한 일들을 얼마나 이루어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칠사계본이나 전최 같은 장치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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