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색모험] 나만의 취미 공유하는'삶의 비상구'

온·오프라인 동호회의 발달이 눈부시다. 같은 차를 타는 사람들 모임이나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동호회처럼 일반적인 동호회는 흔한 얘기. 독특한 취미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연결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별난 모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상식을 깨는 이색 모임을 소개한다.

◆왜 성행하나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사회적 경향과 관련이 있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 하루가 다르게 신상품이 쏟아지고 문화나 취향이 다양해지는 풍조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호회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찾게 된다는 것. 여기에 점점 개성을 중시하는 성향과 타인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구가 맞물려 이색 동호회 결성이 더욱 가속도를 얻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자극적인 활동을 많이 찾는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평범한 것보다 특별한 것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 이색 동호회가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비상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끼리끼리 통해요

대구심마니동호회는 산삼을 찾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2001년 등산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산행의 묘미를 더해 줄 무언가를 찾다 결성했다. 현재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26명. 모두 공무원'회사원'자영업 등의 직업을 가진 아마추어 심마니들이다. 연령은 30~50대까지 다양하다.

회원들은 매주 팀을 이뤄 산행을 떠난다. 보통 1개팀은 4, 5명으로 구성되며 2, 3개 팀이 출정한다. 활동 무대는 전국이다. 산삼을 찾기 위한 그들의 발길은 경상도뿐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출정할 때마다 산삼을 캐는 것은 아니다. 열번 가면 일곱번은 허탕이다. 산삼은 인연이 닿아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보자는 바로 옆에 산삼이 있어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보 회원은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장뇌삼밭에서 산삼 구별하는 법, 캐는 법 등을 교육받는다.

캔 산삼은 판매하지 않고 거의 자체적으로 소비를 한다. 직접 먹거나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선물한다. 3년 전 시가 700만원짜리 35년생 산삼을 캔 한 회원은 몸이 좋지 않은 지인에게 산삼을 주었다고 한다. 총무를 맡고 있는 박현철(31'회사원)씨는 "산을 좋아해 혼자 등산을 많이 다녔는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카페를 발견하고 가입했다. 산행도 즐기고 운이 좋으면 산삼도 캘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동호회"라고 말했다.

규제의 상징이자 추억의 산물인 교복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하는 동호회도 있다. '교복을 입고 텨텨텨'는 학창시절 낭만을 새롭게 느껴 보려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2002년 문을 연 다음 카페는 현재 6천200명이 넘는 회원수를 자랑한다. 2005년 개설된 네이버 카페는 올해의 카페에 선정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고 있으며, 싸이월드 카페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교복을 입고 텨텨텨' 회원들은 오프라인 모임 때 교복을 입는 것이 원칙이다. 교복 덕분에 재미있는 일을 많이 경험한다. 교복을 입고 우르르 나이트클럽으로 몰려갔다 불량청소년으로 오인받아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는가 하면, 놀이공원에 갔는데 직원이 묻지도 않고 청소년 입장권을 끊어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입맛 맞는 사람들이 모인 '매운맛 동호회', 펜 돌리는 기술을 공유하는 '펜돌사'(펜을 돌리는 사람들) 모임도 있다. 펜돌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펜을 돌리는 기본 기술을 비롯해 응용'연계'공중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고수들이 올린 동영상을 보면 속된 표현으로 "밥 먹고 펜만 돌렸나" 싶을 정도로 현란하다. 손가락 위에서 펜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춤을 춘다.

◆평범한 애완 동식물은 싫다

이세준(42'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시베리안 허스키 두마리를 6년째 키우고 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우게 됐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사랑한다. 그는 매일 저녁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한달에 한번 열리는 동호회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역마다 형성돼 있으며 매년 전국의 동호인들이 모여 개썰매 대회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개썰매를 즐기는 마니아들도 있다. 개썰매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대한독스포츠연맹, 개썰매협회 등은 매년 개썰매 대회를 열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정의태(35'경북 영천시)'강현지(33)씨 부부는 현재 알래스카 허스키 등 썰매견 13마리를 키우고 있다. 연예시절부터 개를 좋아해 죽이 척척 맞았던 이들 부부는 2005년 우연히 개썰매 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돼 개썰매의 매력에 푹 빠진 케이스다. 대회를 위해 개를 훈련시키는 것은 이들 부부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개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이들 부부는 공을 많이 들인다. 개를 위해 투자하는 돈만 월 1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개와 교감하며 함께 달리는 기분은 체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개썰매를 개 학대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개를 집에 가둬 놓고 키우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썰매견들은 썰매를 끌며 달리도록 진화된 종이어서 개썰매 대회가 나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구아나를 키우는 모임도 있다.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도 여럿 개설돼 있다. 고등학생인 김준혁(16)군은 2년 동안 기른 이구아나를 최근 다른 사람에게 분양했다. 친구 소개로 우연히 이구아나를 기르게 된 후 정이 많이 들었지만 학업 문제로 잠시 키우는 것을 중단하기로 한 것. 김군이 인터넷 카페에 분양 정보를 올리자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문의가 들어올 만큼 이구아나 키우기는 인기다. 김군은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구아나를 분양했다.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포충낭, 벌레잡이제비꽃 등 벌레잡이 식물을 기르거나 춤추는 풀로 알려진 도무초를 키우는 동호회도 있다. 도무초는 소리에 반응하는 식물로 음악을 들려주거나 노래 또는 휘파람을 불면 잎이 움직인다. 신기한 매력에 빠져 점점 도무초를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사회에선 비주류, 우리끼린 주류

2002년 결성된 '짜장면 되찾기 국민운동본부'는 자장면 대신 짜장면이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단체다. '짜장면 되찾기 국민운동본부'는 "대다수 사람들이 사용하던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꾼 것은 단순히 명칭 변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짜장면 명칭이 회복될 때까지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장면 계란회복 전국민운동본부'도 있다. 자장면 위에 얹혀 나오던 삶은 계란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결성했다. 지금은 활동이 많이 둔화됐지만 2002년 출범 당시 대구를 비롯해 서울, 인천, 울산 등 전국에 흩어져 있던 회원들이 계란을 올린 자장면집과 계란 없는 자장면집에 대한 정보를 활발히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국제치마입는 남자협회'라는 모임도 있다. 회장은 7년째 치마를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이정구(35)씨다. 그는 형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사놓은 치마를 입어본 후 그 매력에 빠져 치마를 애용하게 됐다고 한다. 예쁜 치마를 하나 둘 사다 보니 지금은 40벌 넘게 소장하고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치마를 디자인하고 리폼할 정도로 치마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세상의 모든 남자가 치마 입기를 꿈꾸며 국제치마입는 남자협회 회장을 맡게 됐다.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남자는 은근히 많지만 사회적 체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털털한 사람들 모임'은 외국과 달리 수염 없는 턱이 깔끔함과 세련됨의 상징처럼 굳어진 국내에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염이 잘 자라서 걱정이 아니라 안 자라서 걱정이다. "멋진 수염을 만들어야 하는데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회원들이 가진 고민 중 하나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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