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이백의 시 산중문답의 한 구절이다. 비슷한 내용이 시인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란 시에도 등장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 이백이나 김상용 모두 자연의 삶을 노래하고 있지만 소이부답은 번잡한 세상사를 살아가는 처세의 요령으로도 활용된다. 남이 나를 욕하고 덤벼들더라도 구차한 변명이나 소소한 대응을 하지 말라는 생활의 교훈이다. 참고 기다리면 저절로 풀리는 일을 일일이 변명하다 되레 꼬이게 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나 소이부답은 자칫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불리해 답을 피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웃는 얼굴이 상대를 더욱 화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러는 상대가 칼을 갈고 덤빌 때 말없이 웃고만 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도 생긴다. 알 수 없는 세상사에 정답이 없듯 소이부답도 처세에 만능은 아닌 모양이다.
소이부답은 정치하는 분들도 즐겨 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소이부답하라'고 충고했다. 도덕성 등을 내건 상대의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충고였다. 국민의 요구와 심판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초심의 정도를 굳건히 지키라는 말일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참패를 놓고 집권 한나라당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당 지도부는 일찌감치 사퇴하고 나섰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자리를 내놨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요구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며 말을 아끼지만 그분들도 왜 할 말이 없을까.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분들 모두 어쩌면 소이부답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기본이다. 대화와 타협은 자만에서는 나올 수 없다. 겸손의 마음이라야 가능하다. 선거 때마다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말들이 쏟아지지만 끝나고 나면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는 행태에서 겸손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이부답은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 주장을 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겠다는 자세다. 시장에서, 공사장에서, 거리에서 땀 흘리며 사는 서민들은 배운 게 많지 않고 가진 게 적고 말할 기회도 드물다. 그러나 소이부답해도 그들의 눈과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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