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꽃 지고 속잎 나니

꽃 지고 속잎 나니

  신 흠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變)하거다

  풀 속의 푸른 벌레 나비되어 나니는다

  뉘라서 조화(造化)를 잡아 천변만화(千變萬化) 하는고.

사람 사는 세상은 참 많이도 변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꽃이 지면 속잎이 나고, 벌레는 나비가 된다. 종장의 '조화를 잡아'는 '조화를 부리어' 또는 '삼라만상을 만들어 기르는 힘', '천변만화'는 '천만 가지로 변화함' 이란 의미를 갖는다. 자연 현상에 대한 궁금증, 혹은 자연 예찬이라 할 수 있겠다.

"봄에 한창이던 꽃들이 어느덧 지고, 뒤이어 속잎이 힘차게 솟아오르니 계절이 바뀌었다. 꽃피는 계절에서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풀 속에 있던 푸른 벌레 즉 애벌레도 이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이렇게 변화하는구나. 그런데 누가 이런 조화를 부리어 이렇게 천만 가지로 변화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초장에선 식물을, 중장에선 동물을, 종장에서는 인간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흥미롭다.

작자는 신흠(申欽)이다. 7세 때 부모를 잃고 장서가로 유명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경서와 제자백가를 두루 공부했으며 음양학·잡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개방적인 학문태도와 다원적 가치관을 지녀, 당시 지식인들이 주자학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단으로 공격받던 양명학의 실천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문학론에서도 시(詩)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문(文)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하여 시와 문이 지닌 본질적 차이를 깨닫고 창작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시에서는 객관 사물인 경(境)과 창작주체의 직관적 감성인 신(神)의 만남을 창작의 주요 동인으로 강조했다.

시인의 영감, 상상력의 발현에 주목하는 이러한 시론은 당대 문학론이 대부분 내면적 교화론(敎化論)을 중시하던 것과는 구별된다. 시조를 30여 편 남기기도 했는데 그의 시조는 그의 문학론에 따라 창작된 것으로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풀리지 않을 의문일지 모르지만 이런 의문에서 철학이 생겨나고 종교가 싹틀 지도 모른다.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밝혀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자연이 가진 불가사의는 불가사의로 남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천지 변화를 인간이 다 알아버린다면 세상살이가 싱거워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문무학 (대구 예총 회장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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