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경희(대구 수성구 신매동)
다음 주 글감은 '거리 응원'입니다
♥ 셋집 설움 겪은 아들에 항상 미안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사항이 아니고 뉴스거리도 아닌데 내 인생에서는 제일 큰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내 집 안방에, 내 앞으로 등기가 된 집 안방 침대 위에 누워있다니, 자꾸만 실없는 웃음만 나오고,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그 기분을 연장하고 싶어서 잠들기가 아까웠습니다. 못 먹는 맥주를 한 병 사와서 다 마셔도 잠이 안 옵니다.
결혼 15년 만에 이사를 12번 다닌 끝에 마련한 내 집으로 이사를 한 날이었습니다. 25세 나이에 결혼을 하고 그 해에 바로 큰아이가 태어나고, 한 해 건너서 둘째가 태어나고 금방 네 식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집을 구하러 다녀보면 집주인이 먼저 묻는 말이 '애들이 몇이냐'였습니다. 세를 안 주려는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방을 구해 본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집주인 애들과 다툼이라도 생기고 집주인 아들이 울어버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초지종 없이 집주인에게 죄지은 기분이 들고, 내 자식은 기를 못 펴게 한 것 같아서 무능하고 미안한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벽에 못 하나 박는 것도 간섭을 하는 집주인도 있었습니다.
내 집으로 이사한 날부터 당분간은 길을 가다가 아는 분을 만나면 괜히 물어보지도 않는데 붙잡고 자랑을 했습니다. 내 집을 사서 이사했다고요.
벌써 16년이나 지난 일이 되었습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던 그 아들이 장가도 갔습니다. 그 아들은 내가 느꼈던 그런 마음을 모르고 평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빨리 제 집을 사서 느껴보는 행복감만 맛보길 빌어봅니다.
박병규(대구 중구 동성로)
♥아들 씨름 우승 트로피부터 챙겨
새벽 일찍부터 너무나 분주하다.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과 어머니와 나는 이삿짐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한다.
역시 이사의 하이라이트는 장롱과 무거운 가전제품이 아닐까 한다. 손에 들기 쉬운 물품들은 먼저 트럭에 싣고 무거운 가전제품과 장롱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힘깨나 쓴다고 장롱 옮기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좁은 계단과 현관을 나서자마자 이리저리 쿵쿵 박아댔다. 결국 아저씨들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잠시 힘 자랑을 하려던 나의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트럭은 새로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어떤 물건 하나를 애지중지 닦으시며 보자기에 곱게 싸고 계셨는데, 도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저렇게 닦으시는지 너무나 궁금해 보자기를 풀어보았다. 그것은 군대 제대하고 1년 뒤에 중구청 씨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받은 트로피였다.
앞으로 우리가 살 집에 도착해 어머니와 나는 열심히 짐을 날랐고 어느 정도 이삿짐이 정리되자 어머니는 닦아 넣어 두었던 트로피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이사란 새로운 곳에 자신을 적응하고 정착시키는 일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이며 희망이다. 어머니가 트로피를 닦으신 것도 아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잘살자는 의미인 듯했다.
윤흥기(대구 남구 대명2동)
♥ 왕소금 밟으며 새집 가야 운수대통
트럭 한대 물량의 이삿짐을 보시더니 걸리적거릴 것 같다면서 어머니께서는 새벽밥을 드시고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셨다. 전세 사는 십년 동안 내 아이들 등쌀에 가구들은 멀쩡한 게 없을 정도로 흠집에 낙서로 얼룩져 보는 사람마다 전부 버리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동안 이사 간다고 인사를 건네는 이웃사촌, 한 달에 서너 번 만날 수 있는 고마운 이웃사촌도 있어 방문에다 크게 썼다.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다고.
시동을 걸자 이웃사촌들은 차타고 가다가 먹으라면서 먹을 거리를 많이 사주셨다. 의자에 얹힌 까만 봉지가 스칠 때마다 부시럭거리고 아이들은 좋아 어쩔 줄 몰라 신이 났지만 난 지난 시간 동안 정든 이웃들을 생각하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짐 정리해 놓고 놀러온다는 인사를 남기고 우린 떠났다.
달리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맛있는 과자를 먹기 위해 뒤적거리다가 쪽지를 발견했다. "친구야. 내 집으로 입주하는 널 보니 부럽다. 그동안 허물없이 지낸 시간들, 좋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지내면서 연락하고 짐정리 되는 대로 놀러오렴. 한동안 우리 딸 아진이도 허전해 할 것 같고 눈만 뜨면 붙어 지낸 나도 허전할 것 같아. 항상 행복하게 잘살아야 돼."
이렇게 배웅을 받으며 도착한 새 집에는 외출하신 어머니께서 왕소금 한 가마니를 현관 앞에 깔아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소금이 부서지도록 밟고 들어가야 귀신도 도망가고 부자가 된다는 어머니 등쌀에 우린 열심히 소금을 밟고 짐을 옮겼다. 이사가 끝나자 소금 가마니는 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 소금으로 그해 김장을 했고 모든 게 새것으로 꾸며진 집 안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십년을 맞고 있는 지금 내 아이는 쑥 커버렸고 때묻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집은 세월의 무게가 중심을 잡고 늘 웃고 있다. 박정연(대구 북구 복현2동)
♥ 공사도 안 끝난 집 이사 쓴웃음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뒤 떠나는 이사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그러나 삶은 언제나 녹록지가 않으니 그 반대의 상황이 닥쳤을 때의 당혹감이란. 유난히 전근이 많았던 20여년 전, P시에서 U시로 다시 이삿짐을 싸야 할 일이 생겼었다. 새로 이사할 집은 신축 건물이었다. 몇 번 현장 확인을 할 때만해도 집은 엉성하게 뼈대만 갖추고 있어 집다운 모습을 갖추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집 주인은 세를 놓을 욕심 때문이었는지 내가 제시한 기일에는 반드시 완공이 될 것이니 걱정 말고 이사를 해도 된다는 말로 안심을 시키고 있었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확답을 받은 뒤 결국은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내가 살던 집으로 새로 이사 들어올 사람이 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삿짐을 싣고 달려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뼈대만 갖춘 채 여전히 도배는커녕 문짝도 달지 않은 채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절망감. "짐은 풀어놔도 되는데…" 하며 여전히 무책임한 소리만 하던 집주인과 맞서 한동안 말씨름을 벌였지만 달리 해결책이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집주인의 사과를 받은 뒤 당시 집주인이 살고 있던 집 빈방에 짐을 풀어놓고 아이들과 식구들은 친척집으로, 나는 회사 기숙사에서 보름을 지낸 후에야 다시 이삿짐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가 잘못된 악연 때문이었을까. 이사한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악몽과 가위눌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이사에도 길흉을 따지던 어른들의 속설을 믿지 않고 급하게 이사를 한 까닭은 아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공연히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서웅교(대구 수성구 범어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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