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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칼럼] 축구의 맛

김진구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
김진구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

시쳇말로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남자들이 군대 갔다온 이야기' '축구이야기', 그리고 '군대 가서 축구 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렇게 축구를 싫어하는데 '붉은악마'의 반이 여자라는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프로축구 대구FC의 경기를 운동장을 찾아 직접 관람하는 축구팬은 많아 봐야 수천명인데, 스크린 앞에 앉아 월드컵 거리 응원을 하는 축구팬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 축구에 문외한인 영국 사람이 우리의 길거리 응원을 본다면 한국의 축구 열기가 프리미어 수준보다 더 높다고 오해를 할 정도다. 한국에 축구가 없고 응원만 있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것이 축구가 주는 마력이자 매력이다. 재질은 가죽, 무게 약 450g, 둘레 68~70㎝의 축구공 하나가 냉장고도 아닌데 전 국민을 한숨에 얼려버리기도 하고, 또 순식간에 기분을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리기를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아슬아슬함은 어떤가. 아무리 훌륭한 영화나 드라마라고 해도 축구가 주는 스릴감에는 비교 대상이 되질 못한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깨는 1골이 모든 것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축구의 1골은 배구의 10점, 농구의 70점, 야구의 5점보다 더 큰 감격, 흥분, 희열, 기쁨을 제공한다. 월드컵 중계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종종 있는 것만 봐도 축구는 단순히 발로 하는 공놀이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는, 그리고 명예, 흥분, 분노, 희망이 녹아 있는 각본 없는 진정한 드라마다.

축구는 역습 한 방이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강한 팀도 절대적으로 약한 팀도 없다. 전·후반 합쳐 볼 점유율이 99%라도 골이 없으면 패하는 것이고 1%의 골 점유율을 보이다가도 1골을 얻으면 이기는 것이다. 또한 축구는 손으로 공을 잡거나 공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축구는 물건을 잡을 수 없는 발로 받은 공을 팀 구성원들한테 도로 정확하게 돌려줘야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진정한 무소유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또한 무소유를 통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매력적인 운동 경기다.

어느 스포츠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축구가 특히 남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원시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 수렵시절 사냥감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던 버릇이 뇌 속에 잠재적으로 각인되어 있어 축구공을 따라다니면 사냥감을 쫓을 때의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들이 응원에 열심인 것은 사냥을 잘 하라는 격려의 버릇이 뇌 속에 남아 있어서라고 한다. 여성들이 축구(사냥)를 즐기지 않으면서 응원에 열심인 것이 생존의 법칙이었다니 축구는 참으로 묘하다. 축구와 관련해 뇌에 숨어 있는 비밀이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헛다리짚기를 보면 축구가 아니고 예술에 가깝다. 상대 수비수를 속이기 위해 헛다리짚기를 하는데 이 동작의 원천이 뇌라는 것이다. 공격수가 수비수를 제치고 나아갈 때 왼쪽으로 가는 체하다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때 동작과 동작 사이의 시간이 약 0.06초가 되면 천하없어도 수비수는 공격수를 막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호날두는 수비수의 심리적 불응시간을 이용해 공격해 가는 것이다. 사냥감이 도망갈 때 지그재그로 뛰거나 공격수의 헛다리짚기를 보면 시대, 장소, 그리고 모습만 달라졌을 뿐 축구는 여전히 인간이 원시생활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축구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공을 차 봐라. 공을 차 본 사람만이 축구의 맛을 안다. 축구의 맛은 갓 구워낸 빵 한 조각에 순한 커피향, 흔들의자, 지그시 눈감은 석양, 언어를 떠난 문학, 이 모든 것이다. 축구의 의미는 공의 둥근 형태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축구는 단순히 경쟁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인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삶의 축소판이다. 우리의 인생이 한판승으로 끝나지 않듯이 축구 또한 그렇다. 월드컵 기간에만 반짝 관심을 보였다가 월드컵이 끝나면 나 몰라라하지 말고 갓 구워낸 빵에 손을 대듯이 사랑과 애정으로 축구를 어루만져 주어야겠다.

김진구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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