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 대구시 동구 신기동 안심 3차 주공아파트. J(59·뇌병변 2급)씨가 전동휠체어를 몰고 아파트 내 정자 안으로 들어서려다 흠칫 놀랐다. 5㎝ 정도에 불과한 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 그는 휠체어를 앞뒤로 몇 번 움직인 끝에 겨우 턱을 넘을 수 있었다. 그는 "저 턱을 넘을 때마다 성한 허리까지 망가지는 기분이다"며 짜증을 냈다.
대구도시개발공사와 대한토지주택공사(LH)가 장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내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 경우 장애인 거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아파트 개보수 때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물 대신 외관 개선에 치중하고 있다.
◆장애인 및 노약자 시설 외면
대구도시개발공사(5단지)와 LH 대구경북지부(9단지)가 시공한 대구 영구임대아파트는 14개 단지로, 이곳에 거주하는 1만9천280가구 중 장애인 가구는 28%(5천400여 가구)나 된다. 두 시공사는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된 14개 영구임대아파트 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한 해에만 224억원을 투입해 대대적 보수에 나섰지만 정작 장애인 및 노약자를 위한 시설 마련은 외면했다. 이들 공기업은 외벽재 도장, 통합경비시스템 설치, 어린이놀이터 및 소방시설물 정비 등 외양 개선 공사에만 신경 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영구임대아파트 14곳의 단지 내 턱(장애물) 제거, 동 입구 경사로·엘리베이터·시각장애인 유도블록·상가 장애인 전용 화장실 설치 여부를 확인한 결과 '엉망'이었다.
14곳 중 8곳의 영구임대아파트 내 시설물 입구에는 턱이 있어 장애인 이동이 불편했다. 새로 만든 황금동 황금 3차 주공아파트 305동 놀이터 출입구 3곳에도 여전히 계단이나 턱이 있었다.
전체 948가구 중 245가구가 장애인 가구인 안심 3차 주공아파트(6층) 경우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LH 대구경북지부는 지난해 14억7천만원을 들여 안심 3차 주공아파트의 놀이터 및 조경시설 개선, 통합경비시스템 구축 등 아파트를 개·보수했지만 가장 필요로 하는 엘리베이터 설치는 외면했다.
경사로도 사정은 마찬가지. 안심 3차 17개 동, 41개의 입구 중 휠체어용 경사로는 315동 단 한곳뿐이었다. 한 장애인은"1층에 살아도 오르내리기 힘든데 나는 4층에 살고 있다. 전동 휠체어를 밖에 세워두고 집으로 들어가려면 20분 넘게 걸린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각장애인유도블록도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북구 산격동의 산격 주공아파트만이 동(棟) 입구 계단 앞에 유도블록이 있었을 뿐 다른 13곳의 아파트 어디에도 유도블록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유도블록이 있는 곳은 14곳 중 한 곳도 없었다.
◆수익만 따지는 공기업
입주자 이용이 잦은 영구임대아파트 상가는 장애인 편의 시설이 아예 없었다. 달서구 신당동 성서주공 3단지 상가는 1층 건물이지만 10㎝가량의 턱 때문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다. 14곳 임대아파트 상가 중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곳은 수성구 지산동 지산 5단지 아파트뿐이다. 이마저도 지하 1층에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산격종합사회복지관 이은주 과장은 "장애인이 상가를 이용하기 힘들다 보니 봉사자들이 대신 장을 봐주거나 잘 아는 가게에는 배달을 부탁한다"면서 "영구임대아파트에는 장애인이 많은 만큼 턱을 최대한 없애고 이들을 위한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격 주공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상가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설치를 고려했지만 LH에서 비용 문제로 하지 않았다.
대구장애인연맹 서준호 사무국장은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 중 상당수가 몸이 불편한 노약자나 장애인인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며 "아파트 개·보수 때 이들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입주자를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LH 대구경북지부는 "영구임대아파트들은 오래전에 준공돼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입주자가 시설물 설치를 요구한다면 언제라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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