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은 아름답기도 위험하기도 하다. 익명의 기부는 이름보다 마음을 전면에 두는 사람의 일이기에 가슴에 더 와 닿는다. 하지만 익명이 잘 보장되는 도시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잦다.
익명과 관련되어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건은 1964년 뉴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한 여자가 한밤중에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다 끔찍한 폭력을 당했다. 한 남자가 그녀를 칼로 찌른 것이다. 35분간 지속된 사건에서 38명의 목격자가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 경찰에 연락하였다. 심리학자들의 결론은 목격자가 많을수록 도와주려는 의지와 행동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바로 '방관자 효과'이다. 그 후 책임감 분산이나 도움행동에 관한 많은 실험이 행해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는 같은 상황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행위가 보다 많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는 아닐지라도 나는 익명성에 관하여 생각할 기회를 자주 갖는다. 바로 열차 안에서이다. 뒷자리에 앉은 질 좋은 양복 차림의 두 종교인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종교인 흉을 본다. 짧은 치마에 긴 부츠로 멋을 낸 숙녀는 옆사람의 독서는 안중에 없는 듯 뿅뿅 소리를 내며 계속 문자를 한다. 언젠가는 바로 뒤 숙녀가 막 선을 본 남자에 대해 다른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불평하는 것을 이십분 넘게 들어야만 했다. 전화 내용으로 보아 그녀는 괜찮은 직업을 가진 능력 있는 숙녀였다.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느 날 서울에서 돌아올 때 좌석을 확인하니 옆자리에 이미 한 아저씨가 앉아 우유와 빵을 다소 서두르며 먹고 있었다. 내가 앉으려고 하자 저녁 때를 놓쳤다고 말하며 빵 먹는 것에 양해를 구하였다. 그분은 신문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세로로 길게 접어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였다. 전화를 받는 말의 어조 또한 낮고 예의가 발랐다. 허름한 옷차림에 마르고 기름기 없는 낯빛의 아저씨에게서 나는 격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일들을 겪다 보면 내 자식들의 배우자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열차를 태워놓고 몰래 관찰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조차 든다. 낯선 이들, 게다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그것이 진짜가 아닐까. 한 인간의 품성을 알려면 익명의 바다에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모르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 바다에서 어떤 사람은 마구 행동하고 어떤 사람은 예를 갖춘다.
추선희<번역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