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9)] 전라도는 분화(分化)되는가

전라도향우회는 해병전우회, 고대동문회와 더불어 단결 잘하기로 소문난 조직이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이라도 고향만 '전라도'라고 하면 단번에 서로가 '고향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가까워진다. 이들은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의 핍박 때문에 전라도가 낙후되었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생존을 위해 굳건히 뭉쳤던 것 같다. 냉전시대 '죽음의 바다'였던 서해바다가 장애요인이었는지, '경상도 정권'이 그들을 따돌렸는지는 더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그 시절 전라도 지역의 발전이 늦어졌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중국시대가 열리면서 서해바다는 '교역의 바다'로 바뀌었고, 국가발전의 중심은 경부 축에서 서해안 축으로 옮겨갔다. 우연의 일치인지, 시점도 때마침 경상도 정권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러자 전라도 공직자들이 시련을 겪으면서 키워온 지역발전을 위한 자생력이 DJ와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전라도 정권' 10년 동안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광주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를 위시해서 광주과학기술원, 광(光)산업단지, 삼성전자 광주공장 등이 설립되었다. 전남에는 도청 이전, 무안국제공항 건설, 여수엑스포 유치와 함께 영암'해남과 무안지역에 2개의 기업도시가 지정되었다. 전북에는 지지부진했던 새만금사업이 본격화되었고, 무주 태권도공원조성사업이 추진되었다. 수많은 국책사업과 민간투자가 봇물 터지듯 밀어 닥쳐, 30여 년간 맺힌 설움이 10년 만에 다 풀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려울 때에는 죽어도 안 떨어질 것 같았던 전라도가 중국을 겨냥한 대형프로젝트들이 추진되면서 분화(分化)되는 느낌이다. 전남은 J프로젝트로 불리는 영암'해남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와 함께, 중국과의 합작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무안의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전남은 이곳에 F1 한국그랑프리를 유치하여 금년 10월에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인천송도신도시의 13배인 3억9천만㎡(1억2천만평)에 달하는 전북의 새만금사업은 지난 4월 말 33㎞에 달하는 방조제공사를 끝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무려 2조9천억원이다.

MB정부는 녹색산업과 테마관광이 어우러진 '한국의 두바이'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전남북뿐만 아니라 서해안을 따라 인천의 송도신도시, 경기도의 시화지구, 아산만의 황해경제자유구역, 태안의 기업도시까지 포함해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라북도는 새만금사업에 목숨을 걸면서, 남쪽 광주보다는 오히려 북쪽에 있는 대전의 대덕단지와 앞으로 만들어질 세종시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전라남도는 MB정부의 역점사업인 남해안 선벨트 국제관광사업의 구심점을 통영(경남)에서 여수로 끌어오기 위해 여수엑스포의 성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남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남해안지역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5'18민주화의 도시, 전라도의 맹주였던 광주는 어떠한가? 전남도청이 목포로 옮겨가면서, 싱크탱크인 광주전남발전연구원도 둘로 갈라졌다. 무안공항 때문에 광주공항까지도 폐쇄 직전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사업도 건물공사는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운영이 걱정이다. 광주는 신산업이나 대기업유치에서 새로운 도시 활력을 찾고자 하지만, 정치권력의 화끈한 지원 없이 내륙도시인 광주까지 기꺼이 내려오고자 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외되고 어렵던 시절에는 전남과 전북이 광주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건만, 세상이 바뀌니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찾아 떠나고 광주는 홀로된 기분이다. MB정부는 5+2 광역경제권정책을 통해서 광주와 전남 전북을 호남권으로 묶어 놓았지만, 3개 시'도는 서로 협력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광주 따로, 전남 따로, 전북 따로 살아야 할 형편이다.

발달생리학에서 분화(分化)란 신체 각 부분이 독특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는 쪽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뜻한다. 광주, 전남, 전북이 제대로 분화'발전하려면 비슷한 사업들을 가지고 제각기 경쟁하기보다는, 제반 사업들을 지역별로 특색 있게 구성하여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시키는 상생의 길을 지향해야 한다. 상생이 요구되는 시대, 형제간인 3개 시'도가 함께 윈윈(win-win)의 시너지를 발휘할 무슨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까?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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