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 노트] 지역 정치권 순리 외면한 의원, 그 대가는?

"만약 정의화 의원이 1등을 하고 박종근·이해봉 두 지역 의원이 2·3등을 할 경우 3등 한 분은 단일화 실패로 인한 표 분산 책임을 물어 상당한 욕을 먹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국회부의장 경선 직전 이명규(대구 북갑) 의원이 말했다. 별다른 뜻 없이 말한 이 의원의 말은 불행하게도 곧바로 현실이 됐다. 자유경선을 주장하면서 후보단일화를 부정했던 이해봉 의원이 박종근 의원에 이어 유효투표수 158표 중 28표 득표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3등을 차지한 것이다. 적지 않은 지역 의원들은 "같은 친박계인데다 경북고와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박 의원과 이 의원 두 사람이 단일화만 했어도 대구경북이 이렇게 나약하게 비치진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 의원이 반드시 양보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박 의원이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의 대부분은 이 의원의 '아름다운 양보'를 내심 바랐다. 우선 선수와 나이 등이 우선시되는 정치권의 관행상 박 의원과 같은 4선이지만 다섯 살이 적은 이 의원이 '관례대로' 양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도 현안이 있을 때마다 "순리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선거에선 '순리'도 '아름다움'도 외면해 버린 셈이 됐다.

앞으로 지역 정치권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판이다. 실추된 지역의 정치적 위상 때문에 각종 선거 때마다 몰표에 가까운 애정을 쏟아주던 지역민들의 애정이 식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지역 현안을 추진하는 과정에도 이런 '오합지졸' 성향이 그대로 투영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지역 정치권에 중간 역할을 해야 할 중진들 조정 기능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이 의원은 박 의원과 함께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나서 조정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후배 의원들로부터 "선배님도 양보하지 않았으면서"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른다.

이 의원은 투표 하루 전까지 "60~70표는 확보했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될 것"이라며 호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의장 낙선 이후 호기 좋던 모습을 온데간데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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