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칼럼] 길거리응원 어떻게 재현되나?

월드컵 4강 진출이란 역대 최고 성적과 대규모 길거리응원이란 세계 유례없는 응원문화를 펼쳤던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때의 감동이 아직까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열기는 2006년 독일월드컵으로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열기가 빨리 식었다.

다시 4년이 지나 남아공 월드컵을 맞고 있다. 이제 월드컵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길거리응원이다.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감동적인 자랑거리로서의 길거리응원이 이번에는 어떻게 재현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길거리 응원문화는 자발적이고 조직적이며, 전국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민주적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길거리응원은 축구가 더 발전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응원문화로 각인되어 있다. 2002년의 길거리응원은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자랑거리였다. 축구문화가 성숙해있는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클럽이나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만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 근처에 있는 '펍(pub)' 이라는 술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TV로 축구를 보면서 응원을 한다. 미녀들이 많이 응원하는 것으로 유명한 브라질 응원단에서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긴 깃털로 만든 모자와 북과 트럼펫이 어울려 축구 경기가 아니라 삼바 축제를 경기장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본이나 중국도 그들만의 독특한 응원문화가 있지만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길거리 응원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또 그것을 즐겼었던가?

사회학자 콜린스의 '상징적 의례 사슬' 이라는 이론은 길거리응원이 왜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력을 높여준다. 말하자면 의례, 상징성, 정서적 에너지의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길거리응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의 길거리응원을 그 예로 들어보자. 여기서 의례란 특정 모임이 진행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산업화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역사도 짧아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개인지향성보다 집단지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도로교통과 같은 기초질서의 일시정지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이것은 바로 길거리응원의 장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또 상징성의 측면에서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국가를 대표하여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러한 상징성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열광을 하면서 응원을 하게 되는 감정적 수단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가 하나라는 국민적 깃발을 이끌어내면서 참여자들을 뭉치게 한다. 그리고 정서적 에너지란 너와 나 우리가 상호간 통하는 바가 있다는 감성적 동의를 통해서 얻어지는 활력이다. 우리나라가 역사상 최초로 16강을 통과한 뒤부터 경기에서 이길 수 있고 이겨야한다는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지면서 8강에 이어 4강까지 진출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팽개치고서라도 길거리응원에 참여할 만큼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지게 되었다. 모두가 거리의 광장으로 나아가 다 함께 응원하며 승리를 향해 기를 모으자는 정서적 합류의 물결이 우리를 뒤덮고 말았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이 받쳐주지 않아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로 인해 붉은 악마들이 '꿈은 이루어진다!' 는 정서적 에너지를 고양하여 다 함께 4강 신화를 이루어 보자는 합류의 물결을 또 다시 파도치게 하려는 시도는 실현되지 않았다.

2002년과 2006년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의례와 상징성의 요소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워서 16강 진출의 꿈이 이루어지고, 계속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붉은 악마들이 응원을 할 수 있도록 신바람을 일으켜준다면 모두가 하나로 되자는 정서적 에너지가 충족되어 3가지 조건이 부합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의 함성이 모두가 거리로 라는 정서적 합류의 물결로 연출될 것이다. 이 땅에 다시 붉은 물결의 함성과 다 함께 거리로 라는 합류의 파도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축구가 있어서 설레고 즐거운 계절이다.

임수원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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